노래를 빼앗기면 모든 걸 빼앗기는 것이다!

광주문화운동 40주년 기념공연 「혼신」 ⓒ이춘호

노래를 빼앗기면모든 걸 빼앗기는 것이다!

1864년 수운 최제우는 칼 노래 칼춤으로 민심을 어지럽히고 폭력으로 나라를 뒤집으려 했다는 죄목으로 효수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30년 후 동학 농민혁명은 칼 노래 칼춤으로 세상을 뒤집는다. 문화운동의 관점에서 칼 노래 칼춤과 동학 농민혁명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글을 본 적은 없다. 정말 노래 하나가 세상을 바꾸었을까? 

<혼신>은 광주문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는 주제공연으로 ‘극단 토박이’와 ‘놀이패 신명’, ‘춤추는 나무’, 내벗소리민족예술단이 연합하여 만든 작품이다. 원작은 황석영의「가객」(1965)을 박효선이 1996년 광주민예총 기념극으로 각색한 <광대굿>으로 이번에 다시 다듬어 공연으로 올린 것이다. 실상 <혼신>은 「가객」의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영상, 연극, 탈춤 등으로 이뤄진 집체극과 같은 공연이다. 

오프닝은 광주문화운동 40주년 다큐멘터리인 <불림 : 77년부터 오월광주까지>(감독 윤수안, 2018)의 주요영상과 전남대 탈춤반 7~80년대 학번들의 봉산탈춤 8먹중 공연으로 <혼신>의 무대를 연다. 오프닝 영상이 끝나면 봉산탈춤 2과장 8먹춤 마당이 벌어진다. 불법(佛法)을 어기고 파계한 속이 검다는 뜻의 8명의 먹중들은 한 명씩 차례로 나와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이냐며 온갖 푸념과 욕설을 늘어놓은 후에 자지러지게 한 판 놀아나 보세하며 공연의 분위기를 북돋는다. 사설의 내용도 봉산탈춤을 그대로 읊조리는 것이 아닌 문화운동 40주년을 기뻐하고 지난 세월 문화운동하며 고생한 내력 등을 무시로 내뱉는다. 그러다가 세금을 내라는 위정자의 앞잡이들이 ‘세금!’, ‘세금!’ 하며 무시하게 크고 어두운 깃발을 휘두르며 (춤) 무대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고 8먹중들을 쫒아낸다. 이어 마을의 시장판에서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가객의 노래를 들으며 칭송하지만 이내 흉측한 얼굴에 그를 내쫓는다. 흉측한 얼굴과 아름다운 선율의 가객은 농투성이로 땅을 파먹으며 사는 자신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는 예술가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유일하게 마을의 절름발이만이 가객에게 은신처를 안내해주고 가객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끝없는 수행에 들어간다. 

어느 날 가객은 마을의 소녀들을 만나고, 소녀들은 그의 노래와 피리를 가져간다. 그리고 대나무로 새로 만든 피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객의 노래는 다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정자는 사람들이 가객의 노래를 들으며 동요하자 가객을 고문하고 죽여버린다. 가객의 죽음 이후 마을 사람들은 위정자에 대항하기 위해 그간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가객의 노래를 부르며 일어선다. 일어서는 마을 사람들 위로 광주문화운동의 큰 산인 김남주, 박효선, 범능스님(정세현), 문병란의 사진이 내려오면서 끝이 난다. 

<혼신>의 주제는 단순하고 선명하다. 예술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으며, 문화운동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가객이 위정자에게 죽은 이후가 아니라 가객이 대나무 피리를 만들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어둡고 암울한 한국 현대사 속에서 문화운동은 항상 사람들 곁에 있었다. 반드시 일어서는 사람들만이 아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 옆에 있다가 고양된 순간이 찾아오면 분연히 그들과 함께 일어섰던 것이다. 

1977년 해남읍 서림마당에서 해남 농민 추수감사제가 열린다. 추수감사제의 주요 공연은 김남주의 시 낭송, 일제 때부터 내려온 판소리 안중근 열사가, 민요, 그리고 서울 놀이패 한두레의 <진오귀굿> 공연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관람객으로 온 해남 농민들과 출연진 모두 만장과 깃발을 앞세우고 해남군청까지 가두행진이 있었다. 가두행진을 하자 자연스레 지금 현실의 농촌 문제를 해결하라는 구호들이 터져 나왔다. 당시 해남 농민 추수감사제는 정치적인 시위를 할 수 없는 시국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당시 해남에 있던 황석영, 김남주가 해남 가톨릭농민회와 기획한 이 행사는 그동안 유인 물 몇 장 뿌리고 경찰에 잡혀가버리는 시위 방식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이었다. 또, 탈춤, 풍물 등 전통연희에 바탕을 두면서도 지금 이곳의 현실 문제를 예리하게 풍자하는 마당극은 새로운 예술 양식이었다. 그리고 추수감사제에 참여한 광주의 활동가들은 바로 그해 겨울 광주 YMCA 봉산탈춤 (채희완, 김봉준 등 강사)에 참여하며 문화운동으로써 기조와 방향을 잡아나간다. 추수감사제 이전에는 의식 있는 학생들 몇몇이 ‘녹두서점’의 골방에서 불온서적을 강독하던 정도의 운동에서 벗어나 정말 지식인과 농민이, 사회과학과 현장이 만나며 터져 나오는 신명의 굿판에서 새 시대의 꿈을 꾸게 된 것 이다. 그것은 만인이 부르는 노래가 없이 혁명은 있을 수 없다는 깨우침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광주문화운동은 해남에서 충격 이후 1978년 전남대 탈춤반 창립과 그해 가을 전남대 연극반의 박효선과 탈춤반이 함께 올린 <함평고구마> 마당극을 시원으로 보는 것이다. <함평고구마>는 함평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농민들의 고구마 수매 투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라도 최초 마당극으로 1980년 극회 광대 결성의 모태가 된다. 그리고 극회 광대는 <돼지풀이>(1980년 3월 15일) 창립공연의 성공과 다시 찾아온 봄날의 설렘도 잠시 5·18민중항쟁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혼신>은 광주문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굳이 40주년이란 기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나, 주요 원작인 가객이나 공연 연출은 지난 한국 문화운동 이 가고자 했던 주제, 그리고 앞으로도 문화운동이 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객의 원작자이기도 한 황석영의『장길산』(1974년~1984년 한국일보 연재)은 1970·80년대 모든 문화운동 패들의 길라잡이와 같은 소설이었다. 해주 구월산 광대 패거리인 장길산이 봉건시대의 압제를 뚫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소설은 말 그대로 당시 문화운동 패들의 교본과 같은 것이었다. 딱히<혼신>에서 장길산이 언급되진 않으나 광대패가 앞장선 이후 모두가 일어서는 사람들은 장길산의 결말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혼신>의 여러 장면은 채희완의 <칼노래 칼춤>(1994년)이 이룩해낸 마당극의 주요 성과 등을 가져오고 있다. 떠돌이 광대패가 동학 농민군들의 못다 이룬 꿈을 퍼트린다는 <칼노래 칼춤>과 내용도 유사하지만, 극중 가객이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게 되 는 계기를 제공하는 탈을 쓴 소녀, 깃발춤, 대나무의 씻김과 저항의 춤사위는 <칼노래 칼 춤>의 영향을 보여 준다. 

<혼신>은 광주문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지만, 정작 이를 보러 온 우리들은 앞으로 40년을 갈 수 있을까 고개가 저어진다. 또, 문화운동이란 단어 자체도 생소해질 정도로 모든 것이 문화인 시대 문화 운동이라니? 그러나 아주 단순한 진리, 노래가 없는 세상이 살만한 세상일까 를 생각하면 금방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노래가 없는 세상, 함께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린 아무런 꿈도 꿀 수 없음을 말이다. 

글. 한재섭 (미술사)

badland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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