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그 섬에 흐르는 음악을 위하여

제주도, 그 섬에 흐르는 음악을 위하여

 

제주도에 이효리만 살지는 않는다. 제주도에 사는 뮤지션이 장필순 하나뿐 일 리도 없다. 그 섬에는 요조가 있다. 이상순과 조동익이 있다. 블루스 보컬리스트 강허달림도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도 있다. 싱어송라이터 강산에는 얼마 전 제주도로 옮겨왔다.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에서 오래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조성일을 빠트리면 안 된다. 싱어송라이터 윤영배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부른 들국화의 최성원 역시 운명처럼 제주도로 왔다. 밴드 허클베리 핀은 김녕 바다 앞에서 음악을 만든다. 루시드폴이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는다는 소식은 이제 유명하다. 박하재홍, 방승철, 이디라마, B동 301호도 제주도에 산다. 평화활동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조약골은 여전히 강정에서 싸우며 노래한다. 싱어송라이터 블루315가 제주도에서 녹음실을 운영한지도 여러 해다. 이 뮤지션들을 다 알고 있다면, 이들이 모두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상당한 음악팬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하지만 뭍에서 활동하다 제주로 옮겨온 이들이 제주도 뮤지션의 전부는 아니다. 제주에는 봄날 달큼한 귤꽃 같고, 한라산 붉은 철쭉 같은 뮤지션들이 있다. 제주의 바람을 탯줄로 숨 쉬고, 오름을 향해 걸으며 뼈 굵은 이들. 제주 사람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입에 붙은 이들. 그중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은 제주에서 서울로 옮겨 활동 중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싱어송라이터 이소는 잠시 서울에서 활동하다 돌아와 자신의 첫 음반 [곳]을 제주에서 만들었다. 이소의 노래에는 제주도의 새소리와 소음들이 흐른다. 제주가 고향인 스카 밴드 사우스 카니발은 제주에서 크고 작은 무대를 바쁘게 누빈다. 펑크 밴드 99앵거에서 활동했던 젠 얼론(Zen Alone)도 제주 사람이다. 포크와 일렉트로닉을 부드럽게 연결한 음반 [따듯한 바람]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 1972도 부모님의 고향 제주도에 산다. 제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을 얻고 유명해진 싱어송라이터 박경환의 레이블 애프터눈레코드 소속이다. 애프터눈레코드는 제주도와 조금 더 가깝다. 지난해 11월 첫 음반 [섬의 편지]를 발표한 소속 뮤지션 섬의 편지도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노래 <그 겨울 평대리>, <용눈이 오름> 같은 곡을 들으면 제주도의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섬이 만든 노래다.

그렇다고 제주도에 바다와 오름만 있을 리 만무하다. 인터넷으로 거리가 사라진 세상, 모두가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의 소비자로 평등해진 세상에서 제주도는 순식간에 만인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곳곳에 편의점이 들어섰고, 쉴 새 없이 공사가 이어진다. 그간 제주도의 땅값이 얼마나 올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제주바다와 한라산이 잘 보이는 땅마다 새로운 건물이 섰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제주도로 몰려들어 #제주맛집을 찾고, 똑같은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제주도는 더 이상 예전의 제주도가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에 온 이들이 고기국수와 흑돼지를 찾듯, 제주에서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을 찾지는 않는다. 제주도의 밴드 묘한이나, 조금씩 제주도 사람이 되고 있는 여유와 설빈의 음악을 제주의 숨은 음악이라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제주도로 이주한 뮤지션과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뮤지션이 조우한 코스모폴리탄 밴드 오마르와 동방전력은 어지간한 맛집만큼도 유명하지 않다. 선흘리의 카페 세바는 알아도 오래도록 세바를 운영했던 피아니스트 김세운의 음악을 들어본 이는 몇이나 될까. 제주도에서 오래도록 민중가요를 부르는 최상돈의 노래를 토종 음악이라 귀하게 여기는 이 역시 드물다. 민요패 소리왓은 이름조차 낯설어 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리고 죄송하게도 이름조차 몰라 미처 적지 못한 제주 뮤지션은 제주의 오름만큼 많다.

물론 제주도에 오는 이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제주도에 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관광객이 몰리니 행사가 늘고 축제도 늘었다. 뜻있는 이들이 이어가는 제주도의 음악 페스티벌도 꾸준하다. 누군가는 그 무대들을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제주도에서 비치코밍 작업을 하는 ‘재주도좋아’는 비치코밍과 바다를 노래한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주도에도 음악 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악 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뮤지션, 팬, 공연장, 레이블, 제작 시스템이 자생하며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뮤지션이 있고, 팬이 있고, 공연장이 있으며, 레이블도 있지만 제작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게 자생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도권 밖에서 10만 명 이상 인구가 늘어난 거의 유일한 지역임에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아직 제주에서 나온 스타가 없고, 스타를 만드는 시스템도 없다. 유명해지면 말보다 빨리 서울로 간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지만 유지하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어디나 마찬가지다. 모든 부와 권력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세상에서 음악판이라고 다를까. 어떻게 음악판만 다를 수 있을까. 다만 계속 늘어가는 제주도의 인구와 함께 늘어가는 뮤지션의 수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도 음악 없는 삶은 없다. 음악은 삶으로 스미고, 삶은 음악으로 피어나기 마련이다. 다만 각자 알아서 할 때는 이미 지났다. 뭍에서 온 뮤지션들과 제주도에 있던 뮤지션들이 만나고 어울릴 수 있기를. 함께 공연하고 음반을 만들고 작업하면서 제주에는 제주의 음악이 있음을 알려주기를.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노래를 지킬 수 있기를. 제주의 매개자들과 기획자들이 돕고, 제주의 문화행정이 튼실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제주도에 오는 이들도 #제주맛집을 찾을 때 제주의 음악도 찾아 들어 보기를. 그 음악을 품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bandoby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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