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3 : 이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예술의 주체성을 빼앗고 있다.

이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예술의 주체성을 빼앗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예술계에는 또 하나의 유령이 배회한다. 협치라는 유령이. 낙하산이라는 유령이. 캠프인사라는 유령이. 그리고 도시전문가라는 유령이.

최근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비롯하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 중구문화재단의 남산국악당 민간 위탁 문제, 충무아트홀 관장 선임 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예술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당대를 표현해왔다. 다양성을 소산으로써 예술은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각케하며 그 역할을 전개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예술은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당대를 실천하면서 예술은 그 역할을 확장해왔다. 예술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문화의 민주화’는 낮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과 호흡하고자 하는 문화의 실천이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촛불 혁명 등 한 걸음 더 민주사회를 위해 실천하고, 예술은 그 선봉에 서기도 하고 함께 걷기도 했으며 뒤에서 함께 따라가기도 했다. 그 길에는 검열과 블랙리스트라는 탄압이 있었고, 그것을 저항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예술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개척해왔다. 그렇게 도래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들이 어떻게 확산될 것인지, 예술의 본연의 역할은 무엇일지에 대한 기대와 함께 했다. 그러면서도 예술은 사회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미투’ 운동을 통해 권력 관계와 폭력성을 반성하며, 스스로 해체하고 바꾸어가려는 예술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한 걸음씩 노력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예술가들이 목도하는 것은 ‘예술의 민주주의’도, ‘민주주의로서의 예술’도 아닌, ‘협치’라는 이름의 위계와 캠프 인사와 낙하산으로 점철된 기관장 인사의 도래이다. ‘문화의 민주화’는 이제 예술과 대중의 구별 없이 누구나 예술을 누리는 것을 넘어 누구나 창작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맞이했다. 그것은 예술의 확장과 함께 생활 전면으로 예술이 참여하는 것이기에 반갑고 귀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로서의 예술’이 빼앗긴 목소리를 찾고 민주사회로 발걸음 하는 동안, 예술이 스스로 ‘예술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예술은 또다시 ‘정치’의 통제 체제에 귀속되고 있는 현재를 맞이하고 있다. 예술은 정치에 예속되고 도구화되고 있다. 이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주체성을 빼앗고 있다. 그 전면에 ‘참여’, ‘협치’,’자치’라는 용어가 자리하고 있다. 과정은 정당한 절차라는 이름이다. 정보공개 청구에는 법률상 어렵다는 바로 그 절차로 말이다. 그곳에 캠프 인사와 낙하산과 일명 도시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한가지 목적성으로 의미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차이를 드러내는 예술의 다원적인 목소리들이 그 주체성을 빼앗긴 채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예술은 저항하고 있다. 예술가만이 예술을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으나, 정치의 도구로서의 예술은 거부한다. 예술은 정치적이지만, 그렇다고 정치가 예술을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하나의 목적성으로 수렴되는 예술 정책을 거부한다.

<행진: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 3호>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들을 담았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인천문화재단, 그리고 청계천 재개발에 대한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또한, 광주에서 관주도로 개최되고 있는 광주프린지페스티벌에 대한 집중 좌담을 함께 실었다. 아직 부족한 발걸음이지만 성원해주시길 소망해본다.

2019년 1월
광주충장로에서 편집장/발행인 임인자 올림

글. 임인자 (발행인/편집장)

daeinza@hanmail.net

1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