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 : 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을 열며 1

‘행진 : 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을 열며 1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연극생활을 했습니다. 그 연극은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 연극은 아니었습니다. 연극을 하나의 제도로 보면서 제도 밖의 이야기와 사람들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상과 조우하는 연극의 전위적인 미학도 꿈꾸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최전방으로서의 ‘변방’과 경계의 안과 밖에 깔린 압사당한 것으로서의 ‘변방’이라는 자리에서 연극 활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예술적 미학으로서의 ‘변방’은 점점 실천으로서의 ‘변방’으로 저 스스로에게 무게 중심이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연극 현장보다는 연극을 통해서 알게 된 ‘국가폭력에 의한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의 해결을 위한 실천에 더욱 활동의 방점이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매일 TV를 보며 울고 있기에는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큰 반성으로 이어졌습니다. 2014년 오월의 어느 날 수많은 풍선을 들고 구경을 나온 가족들의 웃는 모습을 보게 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저는 연극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미약하지만 함께 촛불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연극 활동은 어느새 세상 밖으로 나온 거리에서의 어떤 행위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도권 밖에서 연극 활동을 하며 어쩌면 지쳤는지도 모릅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서의 예술 활동과 그 환경과 구조가 불합리하고 모순적이라고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언어로 구조화하지 못했지만 실천으로서의 예술 행위의 어떤 미학들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저항의 현장과 싸움의 현장에 있었지만, 실은 10년 넘게 변방연극제를 혼자 이끌어 가는 일이 힘들었고, 저의 생존은 이대로 멈출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탈 서울을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준비할 때, 연극계에서는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가 생겼습니다. 그 이전부터 어쩌면 전초전과 같은 검열이 있었지만 감각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이 한 작가의 지원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지원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서 보도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연극인들과의 연대 활동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애초에 결심한 고향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일을 결행했습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서울과 지역을 오가는 생활이었습니다. 길에서의 노숙과 저항활동들 그리고 누군가는 “극장이 민주주의 역사가 되고, 연극이 혁명적 행위가 됐다”라고 한 광장극장 블랙텐트 운영, 그리고 김기춘, 조윤선을 위시로 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급 인사들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 (일명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재판장을 오고 가며 방청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활동과 생활을 위해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공연장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문화 활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제38주기 5·18민중항쟁 기념행사 전야제 1부 연출도 맡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회합을 통해 목소리와 표현을 통해 정치와 문화의 힘을 배우게 했던 바로 그 거리와 광장에 30년만에 돌아와 5·18민중항쟁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어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점점 서울 중심의 한국 사회 구조에 대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서울 중심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감각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에서 모니터링을 하며 실시간 화면으로 현출되는 증거 자료들을 통해 지역문화정책과 지역예술단체들이 얼마나 블랙리스트로 유린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감각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투(#Metoo) 고발이 있었습니다. 연극 창작 환경의 구조적인 모순과 그것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억압적이고 구조적인 모순과 지역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예술 생태계를 둘러싼 구조의 변화가 얼마나 절실한지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공적 제도의 변화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현재 있는 한국연극협회를 비롯한 단체의 구조적 모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질서의 공고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의 토호와 같은 폐쇄성도 체감하였습니다. 지역에서는 함께 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하는 ‘고독’의 상태이자 ‘고립’의 상태입니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서울’ 중심의 방향성으로부터 벗어나 ‘지역’으로의 방향으로 전환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는 ‘서울’과 ‘지역’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지역’ 이라는 것의 다중적 성격과 그 정체성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지역’인가에 대한 응답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최근 지역문화 및 생활문화 등 문화를 수식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전개하면서, 예술과 예술가는 점점 대상화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는 누군가에 의해 ‘기획’ 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피어나야 하는 것임에도, 지역문화정책은 그러한 자생적 문화를 관주도로 도식적으로 기획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 아닌가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이러한 양상 속에서 예술의 가치는 점차 호용론과 역할론으로 본연의 모습을 잃어 갈 때,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공연예술’ 그리고 ‘예술’의 활동들을 어떻게 조망해야 할 것인가의 숙제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예술은 어떻게 가능하도록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창작과 유통 그리고 향유의 고리 속에서 플랫폼으로서의 비평에 대한 역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지역에서 ‘비평’의 위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지역에서는 ‘비평의 부재’ 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비평’을 생산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염려하였지만, 부족한 자원들에 대한 아쉬움과 고민보다는 어떻게 ‘비평’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준비를 하면서 처음에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환경과 부족한 능력 탓에 너무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많이 부족하지만, 우선은 만나고, 공부하는 것으로 ‘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플랫폼의 이름은 ‘행진’으로 명명하였습니다. ‘행진’은 그야말로 ‘함께걸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영어 매거진(Zine)의 음차를 따서 ‘행동하는 매거진’이라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공연예술전문출판사 1도씨의 디렉터 허영균씨가 지난 12월에 개최된 ‘서노송동예술촌 인권X예술 포럼’에서 이야기한 ‘글쓰기’ 라는 것의 정의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보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이 인간의 행위라면, 예술의 기록은 인간의 행위를 인간의 행위를 통해 남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를 행위로서 실천하고, 행동으로서 지역 예술비평지의 가능성을 함께 실험해 나가기를 희망해봅니다. 예술의 가능성과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행진’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2019년 1월
광주광역시 충장로에서
발행인/편집장 임인자 올림

글. 임인자 (발행인/편집장)

daeinz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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