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명공연문화거리 ‘대명공연예술센터’ 이동수 센터장과의 대화

대구 대명공연문화거리 ‘대명공연예술센터’

이동수 센터장과의 대화

임인자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을 하면서 ‘대한민국소극장열전’ 좌담을 진행하면서 대구에 ‘대명공연문화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극단 한울림 정철원 대표님이 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그런 소망과 바람을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때가 2015년도인데, 그 이후에 ‘탈서울’하여 광주로 내려와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서울에서는 몰랐지만, 지역에 내려와 보니 문화가 얼마나 서울 중심으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행진: 지역 공연예술비평 플랫폼≫을 준비하면서 11월 말에 극단 함세상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왔다가 ‘대명공연예술센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동수                                     대구에는 주로 중구와 남구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요. 중구 같은 경우는 ‘시내’죠. 중심지가 중구에 있어서 그쪽에 상업 연극이 많이 몰려있습니다. 여기가 거리가 생긴 건 한 2006년쯤이에요. 말씀하셨던 ‘한울림’하고 그다음에 몇 개의 극단, 극장들이 한 3개쯤 있다가, 2016년도쯤에 ‘우리 다 같이 모여보자’, ‘모여서 살면 조금 더 힘을 좀 더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모이기 시작했어요 여기 ‘남구’라는 지역은 경제적인 자립도가 굉장히 낮아요. 그래서 무언가 내세울만한 게 없어요. 그런데 예술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 대구시와 남구 그리고 예술인들이 함께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게 되었어요. 예술인들이 거점을 마련해 보자 해서 공연장이 많이 조성되었어요. 15개의 소극장을 가지고 있죠 이곳을 이제 대명동이라고 해요. 남구의 대명동에, 거의 대명 2동·3동 안에, 걸어서 5-10분 사이에 있는 반경 안에 저희가 15개의 공연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 단체는 36개가 있고요. 그중에 이제 27개의 단체가 연극 단체입니다.

굳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기가 사실은 ‘공연 거리’라고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연극 거리’라고 이야기를 해요. 단체 중에 뮤지컬 단체가 4-5개가 있거든요. 그렇게 따지면 연극 단체가 거의 대부분이네요. 무용 단체가 2개가 있고, 오페라 단체가 하나 들어와 있습니다. 2016년 말부터 조금 많이 활성화되고 있어요. 원래 이곳은 계명대학교라는 곳이 있었어요. 무용과가 유명하고, 연극영화과도 개설한 유일한 4년제 대학인데 이전을 했어요. 저희 어릴 때만 해도 놀러 갈 때 “시내 갈래? 계대 갈래?” 딱 이렇게만 결정되는 정도로 여기가 굉장히 번화가였어요. 하지만 계명대가 빠져나가면서 상권도 죽고, 갑자기 급격하게 노령화되었지요. 그러다보니, 월세가 싸고 시내와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이전하여 터를 잡은 거죠.

저는 중구 지역에 있다가 2016년도에 대명동으로 넘어왔습니다. 저희가 겨울에 극장을 오픈을 했어요. 첫 작품을 박근형 작가의 <청춘예찬>으로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깜짝 놀랐어요.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안 지나다니는 거예요. 거리에 사람이 한 명이 없어요. 그리고 방학 때가 되니까 상권들도 아예 문을 다 닫아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아,.. 왜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니까 일단 이곳이 노령화가 됐어요. 여기가 젊은 친구들이 없어요.

그래서 2017년 2월달 쯤에 다들 ‘모이자’ 이렇게 해서, 한 29개의 단체가 모여서 한번 다들 고민을 해보자고 했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2년 정도 흘러오고 있어요. 요즘에는 여기서 조금 변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방학 때 되면 여기의 상권들이 문을 다 닫았었는데, 지금은 다들 문을 닫지 않고 있어요. 어쨌든 저희가 커피도 사 마시고, 밥도 사 먹고 해야 되니까요. 예술가들이 지역에 함께 있으니, 그런 변화는 조금 생기는 것 같고요.

그리고 이제 2년쯤 흘러오니까, 대학로가 무너지는 거랑 똑같이 건물주들이 조금 벌써 월세를 올려야겠다는 조짐들이 살짝 보여요. 저희는 사실 건물주들과도 총회나 공청회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지하에서 함께 막걸리도 자주 마셔요. 그러면서 “월세 올리면 저 산으로 가겠다. 전처럼 또 다시 여기를 깜깜해지게 만들겠다.” 막 이러면서 월세를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나눠요. (웃음)

언제까지 될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여기가 활성화돼서 대학로처럼 막 사람들이 많아지고 뭐 그러면 월세를 올려받는 건 당연한 건데요. 아직까지는 월세를 올려줄만큼 그렇게 관객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요. 단체들은 점점 더 다들 모여들고는 있어요. 얼마 전에는 경산이라는 곳에서 대구로 오고.. 그러니까 다 같이 모이면 뭔가 일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아직은 한계가 있죠.

제일 문제는 이 거리를 알려야 되는데, 2년 동안 바뀌면서 제가 한번 씩 보는 게, 대구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광석 거리’라는 곳이에요. 거기가 사람들한테서 떠밀려서 가야 될 만큼 되게 좁은데 사람이 많아요. 거기도 ‘방천시장’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시장이 완전히 무너져서 상권이 다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예술가분들이, 미술을 하시는 분들이 거기서 들어가서 작업을 하다가, 그쪽이 벽화를 그리기가 아주 좋아요.. 그래서 술 한잔 드시고, 광석이 형님 생각하시면서 거기다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가 그런 문화 공간이 된거죠. 이제 거기서 젊은 친구들이 모여서 ‘어, 그러면 여기를 김광석 거리라고 만들어서 우리가 좀 놀아보자’ 이렇게 해서 거기 있는 작가분들끼리 모여서 동선도 세우고, 축제도 만들었는데요. 관이 개입하면서 결국 덩치는 커졌죠. 하지만 반대로, 예술가들이 다 쫓겨났어요. 그러니까 처음에 거기 ‘방천시장’이라는 곳이 문을 닫아서, 월세가 조그마한 한 칸에 20만원 했죠. 지금은 비싸요. 결국에는 건물 주인들만 살아나는 건데. 저희들도 사실은 이 거리에서 가장 큰 고민이 그거에요. 사람 많아지는 것도 좋은데, 뭐 일단 많아지고 나서 생각할 일이겠지만요.

임인자                                     2017년 2월에 연극 단체들에서 다 같이 모이셨다고 하셨는데 그 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동수                                     그때는 연합회는 아니고, 대명공연문화거리 추진위원회가 있었는데요. 많은 단체들을 모아서 연합회로 만들자고 이야기했던 게 2017년도 2월이죠. 저희가 대명공연예술센터를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와중에, 2층에서 모여서 한번 발촉을 해보자 해서 ‘대명공연예술단체연합회’를 만들었어요. 그때 ‘액터스토리’의 김재만 대표님이 첫번째 회장을 하셨구요. 저는 사무국장을 한 2년 했고, 올해 초에 2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은 일이 너무 많아요. 단체들이 많아지다 보니까요. 그래서 사무국장을 하면서 제가 운영하는 극장이 거의 황폐해지고 있어요. 새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황폐해져서 (웃음) 그래서 보기도 싫었는데, 그래도 여기를 처음 만들었지 않습니까. 여기에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거리가 살지 않을까?’라는 건방진 생각 때문에 할 수 없이 제가 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인자                                     대명공연예술센터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동수                                     저희를 알리는 일들이 가장 큰 거죠. ‘대명공연거리’를 알리고, 어떤 공연단체들이 있는 것들을 알리는 거죠. 근데 사람들이 물어봐요. 저희가 작년에 여기 이 거리 안에서 한 150편 정도의 공연을 했었어요. 근데 보는 사람들마다 물어보거든요. “거기서 뭐해요?”라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이만큼 많이 했는데 왜 모를까?’ 이런 생각들이 들죠. 그게 가장 딜레마이고 고민이기는 하지만 그건 처음에 만들어지는 이 과정에서 계속 알려 가야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정착하는 과정 이런 것들이 그동안의 2년 동안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의 2년은 여기서 나가서, 여기에는 뭐가 있고, 누가 살고 있고 이런 것들을 잘 알리고 싶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중구에도 극장들이 있어요. 거기는 잘돼요. 관객도 많고요. 근데 ‘<라이어>가 나쁘다, <보잉보잉>이 나쁘다’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주로 그러한 연극이 상연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연극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어요. 그러니까 ‘연극은 직업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게다가, 사실 연극이라는 장르를, 그냥 이름을 ‘라이어’로 바꿔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 ‘대명공연거리’에서 150편이라는 공연을 하지만, 중구에서 ‘라이어’ 한 달 공연하는 것보다 이곳에서의 공연에 도통 관객 수가 작으니까.. 그런 거에 대한 고민들이 있는 거죠.

요즘은 대구시에서 하는 자문회의 등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그곳에서 ‘우리는 왜 관객들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계속 하면, 시나 기관에서는 “재밌는 것 좀 하세요.”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면 저는 ‘내가 하는 연극이 정말 너무너무 재밌는데? 미칠 것 같은데? 막 너무 매일 봐도, 너무 재밌고 막 가슴이 벅찬데…그건 나만 그런가’ (웃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연극이 좋거든요.

이곳 대명공연예술센터의 주목적은 사실 두 가지입니다. 저희 연극을 알리는 전시 목적과, 교육 목적인데요. 이 센터를 처음 만들 때 저희들이 하고 싶었던 첫 번째는 연습실이에요. 지하는 일단 지금 연습실을 만들었어요. 36개의 단체 중에서 공연장도 없고 연습실도 없고, 그냥 조그마한 사무실을 얻어서 몇 팀이 모여서 작업을 한 팀들도 있고요. 그런 팀들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연습실을 제공해보자 싶어서, 지하에 연습실을 만들었고요. 1층은 정보 공개실로 두고 책이 비치되어 있고 가끔 리딩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2층에 하고 싶었던 게 뭐냐면,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연극이 곧 없어질 것 같아서요. 빨리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는데요. (사이) 이게 저도 참 무지하지만, 찾아보니까 자료가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 있는 원로 선생님 중 한 분이 이사하시려고 내놓았는데, 박스 여섯 개를 폐지로 알고 다 들고 가버린 거에요. 연극은 주로 대본 등 종이가 주로 많기 때문에요. 저도 결혼해서 이사를 13번이나 하다보니까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료들이 아예 없어요. 그래서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서 개관을 계속 몇 개월을 지연시키고, 또 지연시키고 했는데, 결국 자료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박물관이 아닌 전시실이라고 명칭을 붙여뒀어요. 사실 전시실도 내려가 보면 그렇게 많은 자료들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연극 자료들을 모으자’ 그래서 각 극단들에 있는 자료들을 이쪽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수장고까지는 아니지만, 이러한 시설을 만들어서 나중에 자료들을 누가 찾을 때 찾아보게끔 모으고 보관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3층 같은 경우에는 대구시의 주도로 여기다가 VR로 연극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VR을 쓰고 걸어가면 무대 위에서 내가 연기도 해볼 수 있고, 뭐 커튼콜 이런 것들도 해볼 수 있는데요. 연극 공연을 그렇게 찍어놓은 게 없어요. 저는 단순하게 우리 공연 찍어놓은 거 하나 올려놓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 했는데, 안 그렇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촬영을 해야 된대요. 촬영도 하는데 2000만원 든대요. 저희 회비도 3만원인데, 1년 다 모아봤자 회비 105만원 밖에 안되는데 (웃음) 그래서 결국에는 안되고, 대구에서 만든 <투란도트>라는 큰 뮤지컬이 하나 있어요. <투란도트>를 그렇게 VR 촬영을 해 놓아서, 현재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구에도 원로 선생님이 4분 계시거든요. 그 분들이 이제 오셔서 연습도 하시고, 잡담도 나누시고 그렇게 하시는 조그만 ‘사랑방’이 하나 있습니다. 그 2층에 저희가 ‘포토존’이라고 무대를 만들어 놓았는데요. 올해부터는 원로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연극을 읽어주는 할아버지’라는 프로그램으로 센터를 찾는 단체 관람객과 관객들에게 선보이려고 하고 있어요.

처음엔 여기에 교육을 어떤 걸 할까 생각하다가 ‘배우 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배우들은 끊임없이 교육을 받고 연습을 하고 해야 되는데, 막상 만들고 보니까 일단 배우들이 너무 바빠요. 저도 뭐 거의 하루에 한 20시간 정도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바빠요. 여기서 연극이 밥벌이가 안되니까, 알바도 해야 되고. 낮에는 아동극을 해야 되고, 저녁에는 또 연습도 해야 되고요. 또 둘러앉아서 의상도 만들어야 되고, 무대 세트도 만들어야 되고, 또 뭐 자체적인 극단 프로그램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사실은 ‘배우 재교육’이라고 이름을 붙여놨는데 일반인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임인자                                     대명공연거리에서 활동하는 단체 중에 젊은 극단들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수                                     많죠. 아까 이야기했듯이 그런 단점이 있어요. 제가 ‘온누리’라는 극단에 굉장히 오랫동안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극단을 만든 게, 지금 이제 2년 됐거든요. 전 신규단체입니다. 지원금이 없어요. 3년이 지나야지 지원금이 나오니까요. 근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오면 제일 먼저 극단부터 만들어요. 3년이 지나면 그렇게 되니까요. 저는 지원금을 주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대구에는 연극영화과가 계명대학교, 대경대학교, 경상대학교, 이 정도로 있는, 여기 있는 친구들이 대학을 나오면서 극단들을 만들어요. 대표들이 30대 초중반의 젊은 친구들이 많아요. 20대는 없는 것 같고요. 저는 여기 앉아서 젊은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생각들도 되게 진취적이고 바르고, 또 배워야 될 것도 많고요. 현재 대구가 문화산업도시로 예비 지정을 받아서 5년 동안 사업을 하는데, 요즘 주로 이야기를 많이 하러 가요. 그런데 나이가 50이 넘어가니까, 고민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연극이 직업이니까 생각이 많아져요.

임인자                                     서울에서도 청년지원이 많아졌어요. 확실히 연극계에 세대교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점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선배 그룹들이 강한 것 같아요.

이동수                                     저도 50대인데 대구에서는 아직도 젊은 편에 속해요. 문제는 지역에 중간 세대가 없다는 것이에요. 중간 팀이 없어요. 저희 다음 세대가 40대쯤 친구들인데, 그리 열심히 서울로, 막 서울로 올라가는 세대들이라서 중간 세대들이 잘 없고요. 저랑 저희 사무국장이 30대 초반이에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면, ‘하…’ 이런 생각들이 들 때가 좀 많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저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했지만 오디션을 통해서 배우를 뽑는다고 했는데, 서울 배우들이 훨씬 더 많이 와요. 서울에 계셨으니 알겠지만, 저는 대학로에 ‘연극이 없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거의 많은 대기업들에서 대관 사업을 하고 있고, 그리고 <개콘>, <라이어>, 그리고 또 <죽여주는 이야기> 이런 류의 극장들이 건물에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요. 심지어 대학에서 운영하는 극장도 기획이 아니라 대관이 넘치는 상황을 보면서 놀랐어요.

최근에는 급격하게 변화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 여기 안에만 해도 굉장히 많이 변해요. 많이 변하는 것도 느껴지고 하는데, 사실은.. 연극이.. (사이) 모르겠어요. 너무 빨리 가니깐. 지금 어느 순간 공연에 노역(老役)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가실 데가, 아예 공연을 출연하실 만한 공간 자체가 없어져버려요. 요즘 청년이라는 단어를 안 쓰면, 지원을 안해줘요. 그러니까 전부 젊은 이야기, 젊은 층의 이야기, 청년 이야기. 지금 저도 <청춘테러>라는 공연을 하고 있는데, 하다 보니까 저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관객들이랑 공감대를 형성해야 되는데, 이 관람객들이 전부 다 젊은 2-30대의 세대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거기에 또 맞추다 보니까 그러면 이제 점점 원로 선생님들 같은 경우에도 출연할 만한 배역이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대구에서 <청춘연극제>를 1년에 1번씩 해요. 아직까지도 연습하는데 너무 즐거워하시고, 좋아하시고, 공연 끝나는 시기 한 일주일 정도는 굉장히 활기차세요. 그런 것도 트렌드로 이야기해야 될 겁니다.

임인자                                     대구의 공연예술 생태계는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이동수                                     대구의 전체적인 관계는 좀 괜찮은 편입니다. 일단 소극장이 많기 때문에요. 대구에 있는 소극장을 다 합치면 한 25개 정도의 소극장이 있어요. 그리고 중극장, 대극장을 합치면, 전국에서 서울을 제외하고, 극장이 제일 많은 공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좀 약한 게, 스텝 부분이 조금 약해요. 저희가 요즘 대구문화산업도시를 하면서 회의를 할 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스텝 부분이죠. 여기에 지금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계시는 조명 감독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세요. 극장들이 많기 때문에, 극장에 다 소속되어 있어서요. 그리고 무대를 제작하는 무대 제작소가 대구에는 역시 한 군데 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기 길 건너편에서 하시는 분이 한 분 밖에 안 계세요. 의상제작소가 저기 맞은 편에 있기는 한데, 사실 그곳은 잘 몰라요. 0여기에는 의상 분야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온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대부분 거의 다 제작하고요. 요즘 의상비가 비싸요. 제작하면 너무 비싸요. 그래서 센터에서 의상 제작 교육을 해요. 한 2년을 하니까 옷을 만들기 시작하시더라고요. 한 2년 정도 해보니까, 작년에 저희가 만들어놓은 옷들을 전시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잘만드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그런 것도 하고 있고요.
분장은 대구가 좀 강한 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에 유명한 교수님이 한 분 계셔서요. 분장과가 조금 많이 활성화 돼있어요. 배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저희 이제 대구 연극제 기간이 다가오는데, 연극제 기간에는 거의 모든 배우가 공연을 합니다. 이 일을 전업으로, 직업으로 하고 있는 배우들이 60명 되려나? 50명도 채 안될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했듯이, 정회원 극단이 대구에 총 9개가 있는데요. 연극제를 하게 되면, 배우들이 없어요. 다 한때 서울로 올라가던 시절이 있었어요. 서울 대학로에 가면 대구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많이 있지요. 대구에서 만나는 것보다 대학로에서 그 친구들을 보는 게 훨씬 더 빠르죠. (웃음)

임인자                                     서울로 한참 올라가던 그때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이동수                                     그렇죠. 2000년도에, 저희가 2000년대 초반부터 올라가기 시작해서 다시 이제 내려오기 시작한 게 최근 3-4년 정도 되요.

임인자                                     대구가 어느 순간부터 뮤지컬이 굉장히 많이 활성화됐던 것 같아요. 또 기사를 보면 관객들도 굉장히 많이 가시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동수                                     제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한 1년여 근무를 했었어요. 대구가 원래 음악 도시에요. 음악 분야 중 성악이 굉장히 강세인 도시거든요. 서울에 가지 않아도 대구에 뮤지컬이 와요. 대형 뮤지컬들이 엄청난 강세로요. 그리고 대구가 내륙지방에 있다 보니까, 그동안 내세웠던 게 사과, 석류 뭐 이런 건데요. 일단 현재 사과는 이제는 대구의 것이 아니죠. 더 올라갔죠. 날씨 때문에, 더 위쪽으로 충청도 쪽으로 올라갔죠. 석류는 이미 뭐 서울로 다 옮겼고요. 그래서 이제 문화를 가지고 도시 브랜드화를 만들려고 하다보니까, 사실은 연극이나 무용이나 이런 순수 예술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기는 사실 좀 힘들어요. 그래서 이제 약간 상업적인 것 중 오페라도 있기는 하지만 오페라도 순수예술 쪽에 가깝고, 그리고 제작 규모도 너무 크고요. 특히 외국에서 오페라 하나 들여오려고 하면 수십억이 드니까.. 그래서 생각했던 게 뮤지컬인거죠. 뮤지컬이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임인자                                     대구에서 뮤지컬과 연극과의 선순환 관계는 어떤가요?

이동수                                     사실 비판적이긴 합니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대구에서 만든 대표적인 브랜드가 뮤지컬 중에서 <투란도트>라는 뮤지컬이 있어요. 그런데 대구 자본을 제외하고 다 서울 사람이에요. 작가, 심지어 조명 감독님, 음향 감독님, 무대 감독님.. 그러다 보니 대구가 아닌 서울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나을 정도에요. 물론 대구에 뮤지컬이 생기면서, 대구에 뮤지컬 극단도 많이 생기고, 대구가 뮤지컬 관람객도 많고, 서울을 제외하고, 타 도시에 비해서 굉장히 많이 발전한 건 사실이에요. 작곡가들도 많아졌고, 감독님들도 많아지고 하기는 한데요. 아직은 조금 아쉽지요. 제작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대구에서 조금 많이 하면 좋겠는데요. 사실은 이게 인프라 측면에서 보면 제작기능보다는 축제 기능이나 기획, 이런 게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아쉽지요. 저도 해보니까 그렇죠.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키워서 공연을 하면 좋겠는데, 성과도 잘 안나오면 서울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겠죠.

임인자                                     그 생각을 못했어요. 저는 대구에서는 뮤지컬이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동수                                     근데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그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대구에 뮤지컬 극단이 여기 안에만 해도 지금 5군데 정도나 있으니까요. 수준도 되게 많이 높아졌고요. 처음에 저희가 있을 때만 해도 지역에서 몇 편씩 끼어서 공연을 했었는데, 지금은 개성도 상당히 높고요. 또 반대로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고요.

임인자                                     관객들이 공연을 계속 보다보면 점점 순수예술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는데요. 관객 부분에서의 순환 구조는 어떤가요?

이동수                                     사람들이 공연을 볼 때, 예를 들어서, 요즘 12월 달이 되면 회식 문화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들을 해요. 그래서 좋은 공연을 한 편 보고, 밥 한번 먹고 이러죠. 하지만 여전히 뭔가 폼이 나는 것을 원하지요. <명성황후>, <라이언 킹> 등을 보면 진행하시는 분도 폼이 나고, 만든 사람도 자부심이 생길 거고, 유명한 작품 위주로 관람하다 보니, 이곳 대명공연문화거리까지는 잘 찾아오지 않죠.

대명동에서는 관객이 지금 고민이에요. 옛날에 크리스마스 특수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관객이 많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 대구가 ‘문화 도시’가 아니고요. ‘문화 산업 도시’에요. 올해부터 연극 담당과가 문화과에서 문화산업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이걸 잘 풀어보면, 뮤지컬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시면 돼요.

순수 예술이 중요하다고 회의 같은 데 가서 열심히 주장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조금 밀려난다는 생각이 들긴 하죠. 또 시나 기관 입장에서도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하고요. “지원해 주세요”, “가난해요”, “힘들어요”, “관객이 왜 안 올까요”, “돈이 없어서 무대를 못 만들고 있어요”라고 계속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과연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니까 점점 전투력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훨씬 더 많이 들고요.

근데 사실 전투력은 많이 잃었어요. 지원금이 대구문화재단에서 생긴 지가 2006-7년 이쯤에 생긴 것 같은데요. 그전까지만 해도 정말 많은 전투력을 가지고, 다들 막 밤 새우는 건 기본이었고요. 엄청 뛰어다녔었는데요. 이게 지원금이라는 게 그렇죠. 내가 처음에 공연을 만들겠다고 계산을 해보면 ‘아, 돈 천만 원 쯤 들겠는데?’라고 이야기해서 지원금을 신청하면, 거기서는 한 400만원을 주고요. 결국 400만원 짜리를 만들어버리니까요.

퀄리티도 점점 떨어지고요. 그러니까 퀄리티가 떨어지면 관객들도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고요. 물론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젊은 친구들 같은 경우는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좋기는 해요. 밤새워서 연습하고요. ‘백치들’이라는 곳이에요. 그 다음에 ‘극단 에테르의 꿈.’ 이런 젊은 친구들이 있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두 개인데요. 색깔들이 조금 다르기는 한데 굉장히 전투적이에요. 이 친구들이 아이디어는 또 너무 좋고요. 홍보하는 아이템들도 굉장히 참신하고요. 그리고 우리들이 해야 되는 ‘마을교육사업’이나 이런 것들도 스스럼없이 하죠. 그러니까 요즘 회의에 가보면 그런 게 있죠. 교수님들이 많이 오시고, 뭐 인문사회부서 이런 곳에서 각종 전문가들끼리 회의를 하잖아요. 그런데 실행을 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나이쯤 되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젊은 친구들은 일단 저질러놓고, 저희 어렸을 때처럼 일단 저질러 놓고 되든지 말든지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죠. 그렇게 뭔가를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저지르기 전에 고민이 너무 많아진다는 거 있잖아요. 저지를 수가 없는 약간 그런 게 생기는 거죠.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이렇게 활동을 많이 해야 되는데,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우리를 잘 안 보려고 해요.

임인자                                     센터가 아마 그런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동수                                     하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만들고 싶었던 게, ‘기획단’을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진짜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일을 좀 저질러라 제발! 내가 다 막아줄게!’ 그래서 뭐 누가 그러더라고요. 요즘 앞에 ‘청년’ 이라는 말을 안붙이면 큰일 난다고요. 우리도 ‘청년기획단’이라고 만들어서 해보라고.. (웃음) 여기는 저희는 36개의 단체인데요. 회원이 다 대표님들밖에 없어요. 36개 단체의 36명이 회원인거죠. 그래서 “뭘 합시다”라고 이렇게 단체 채팅방에 공지를 해요. 일단 대표님만 알고 지나가는 경우,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경우, 괜찮아서 이야기 안한 경우, 하기 싫어서 안한 경우, 이런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밑에 있는 실행하는 친구들이 ‘하고 싶은데..’라고.. 그래서 대표자가 아닌 극단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청년기획단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처음에 여기 와서 하고 싶었던 게 그거였어요. 공동체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각 극단에서 갖고 있는 정보도 함께 공유하고, 관객들도 함께 유치하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 경쟁해야 하는 체제가 되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임인자                                     저희가 비평집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지역에 연극 평론가가 아예 거의 없어요. 연극이 올라가면 또 글로 쓰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부산, 대전 등 몇 군데에 평론가가 계시는 정도이고 문화뿐만 아니라 평론 역시 너무 서울에 집중되어있다는 생각 때문에 절실한 마음으로 만들자고 결심하게 되었거든요.

이동수                                     비평.. 전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거든요. 대구에는 평론을 하시는 교수님도 계시기는 한데..거의 서울 지역에 기고를 하시니까요. 대구에는 평론이 잘 없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들 쓰셨는데요. 지금 문화예술회관에 계신 최현묵 관장님이 <<대구 연극사>>도 쓰시고 많이 활동을 하셨는데, 지금 관에 계시다보니 잘 안나오시는 것 같네요.

임인자                                     여기서 ‘관객 대상 비평 프로그램’은 운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변방연극제를 할 때는 관객 비평단도 운영을 해보고 그랬었거든요.

이동수                                     저희는 비평단은 아니고, 여기에 거리에 홍보단이 있어요. 홍보단이 이제 저희가 20명 정도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연령대를 20대부터 시작해서 70대까지 쭉 구성돼 있어요. 그래서 연극 공연이 있으면 연락을 취해서 공연을 보고 글도 써요. 관객인 자기의 관점에서요. 저는 비평도 중요 하지만 관객의 관점을 주로 좀 많이 듣는 편이어서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저희 관객들하고 젊은 연극인들하고 모여서 저희가 컨퍼런스를 한번 진행을 했었어요. 아우.. 박 터지게 싸우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연극하는 친구들은 자꾸 이제 관객들이 ‘아 이건 안되고 저건 안되고’ 이러니까 어린 친구들이 열 받은 거죠. 자기들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치열하니까 재밌더라고요. 주로 여기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건, 저희를 많이 알리는 것과 공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여기서 제가 컨퍼런스를 되게 많이 진행을 했었어요. IT하시는 분들하고도 만나서 이야기를 몇 번 해봤고요. 주민들 하고도요. 제일 얘기하고 싶은 건 고위직 공무원들이죠. 시장님 이런 분들이요. 그래서 예술가랑 청년들과 시장님과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안 하시겠죠. (웃음)

요즘 큰 바램은 예술인들이 떳떳하게 직업인으로 인정받는 거에요. ‘연극이 직업인가?’ 이런 고민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거든요. 비평가들이 조금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일 큰 건 관객이죠. 그니까 저희는 어차피 나만 항상 즐겁고 재밌는 공연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뭐 공연을 보고 나가면서 ‘뭐야 이게? 이 따위로 만들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임인자                                     네. 오히려

이동수                                     네. 그래야지 이제 ‘왜 이런 걸 왜 만들었어?’ 근데 그런 것 조차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그래요. ‘공연 진짜 재미없어요.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이야기 안해요.

그냥 연극 보러 안 오죠. 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바뀌면 좋겠어요. 우리 어렸을 때는 밖에서 관객들이 막 뭐라고 하기도 하고, ‘ 야, 너 이딴 걸 왜 만들었어? 이게 뭐야? 너 무슨 짓이야?’ 막 이렇게 했는데요. 요즘은 아무도 안물어봐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물어봐요. ‘오늘 공연 어떠셨나요?’ 이러면 표정에서 ‘아.. 네.. 재밌었어요..’ 이러면 재미 없었다는 이야기죠. 신경 써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뭔가 조금 발전을 한다든지, 아니면 이게 타협점이 안 맞으면 좀 바꿨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고 대신 다음부터 안 오시니까요. 그런 게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대구라는 도시에서 순수 예술을 하기가 사실은 좀 힘들고요. 여기는 문화산업 도시라서요. 그래서 좀 젊은 친구들이 전투 의식을 잃어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게 있죠.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기는 한데, 좀.. 그러면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관객이 없어요. 좀 많은 관객들이 와서 그래야하는데.. 이게 연극이라는 게 말이에요. 저도 진짜 우연치 않게 들어갔던 공연장에서 우연찮게 봤던 공연이 내 인생을 바꿔놓아서 이렇게 30년 넘게 이 길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 누구한테는 이게 좋든 나쁘든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게 이제 저희가 바라는 점이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이기는 한데, 관객들이 안 보시니까요. 그게 안타까운 거죠.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든지 안바뀌든지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것조차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도.. (웃음)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너무 슬퍼서.

그러니까 저희 여기에 36개의 단체들이 모여서 하고 있으니까 장점이 되게 많아요. 많은 힘들이 모이고 모여서 무대 위로 많이 발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웃음) 재밌네요. 사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할 공간들이 거의 없어요. 요즘은 ‘예술인이 직업인가?’ 이 이야기를 많 이해요.

임인자                                     근데 중요한 말씀이어서, 네.. 사실은 이렇게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실마리가 안 보인다면, 거의 암흑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든 돌파를 하시려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동수                                     그래서 요즘 이제 연극을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봐요. “아 배고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야, 너는 너 좋은 거 하잖아” 아직도 그래요. “야 너네는 너네 좋은 것들 하고, 그냥 너네 즐거운 것들, 너네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는데 좀 배고프면 어때?”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 제가 나이가 들어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거에요. “저희도 소방관이나 경찰관하고 똑같이 사명감을 갖고 합니다. 저희는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요, 물론 좋아서 하는 거기는 한데, 저희는 굉장한 사명감을 갖고 하고 있어요. 근데 애초에 목숨 내놓고 합니다, 생계 수단도 없이, 월급도 없이요.” 그렇게 약 30년이 지나보니까 그거에 대한 당당함은 어느 정도 생기더라고요. 연극이 잘 됐으면 좋겠네요.

임인자                                     네,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도에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으로 대구에 왔을 때에는 이제 막 거리를 조성하고 조금씩 조금씩 모인다고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연극인들이 주축이 되어 ‘대명공연예술센터’까지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수                                     네 재밌어요. 저희끼리 있으면, 그니까 저는 거의 1년에 한 364일을 대명동에서 살거든요. 여기 오는 게 제일 즐거워요. 아침에 눈 뜨면 여기에 왔다가 눈 감기 전까지 여기 있다가 가요. 여기가 제일 재밌어요. 저희가 이제 연말에, 조그마하게나마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었어요. 웹검색에서 ‘대명예술센터’라고 치면 홈페이지가 있어서요. 공연이 많기는 한데, 중구난방 막 흩어져 있어서, 공연이라도 조금 모아보려고 하나 만들었어요. 언제든지 전화주고 오시면 됩니다. 연극인분들, 관객분들도 ‘대명공연거리’로 많이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길을 닦고 쓸고 있겠습니다.

글. 임인자 (발행인/편집장)

daeinza@hanmail.ne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