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인>과의 대화

<무명인> ⓒ 사진제공 이목화

<무명인>과의 대화

 

임인자                                  원래는 시각 쪽에 관심이 많이 있다고 하셨죠.

이목화                                  네. 제가 예전부터 늘 이런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되게 강해가지고, 그런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없으니깐 그래서 만들게 됐어요. ‘실험적 동시대의 예술 커뮤니티 – 절절살롱’1이라는 엄청 이름 거창한 이름을 지어서 실천하게 됐어요. 그런데 모일 공간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저도 돈이 없으니까 돗자리를 들고 잔디밭에서 모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한계가 있으니까 어떻게 재밌게 모일 수 있을지 고민을 하던 중 오프닝에 ‘책과 생활’ 의 신헌창 선생님이 오셨었어요. 그때 전시에서 ‘절절살롱’에서 나눴던 대화를 아카이브 한 글을 읽으시고 헌창선생님이 ‘책과 생활’에 공간이 있으니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였을 거예요. 그때 한 3일 정도 책방에서 모임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모이다 보니 우리끼리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여기에 모인 분들과 함께 만들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무명인>을 만들게 됐어요.

원래는 사실 그 모임을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시각 미술을 하시는 분들과 전시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미술을 하시는 분들은 안 오셨어요. 적은 숫자였지만 다들 문학이나 인문학에 쪽에 관심이 많은 분이 오셨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가 텍스트라고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기록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계속 녹음을 하고 있었고, 그 녹취를 풀어서 이제 누가 대화를 했는지 모르게 주제별로 글을 묶어서 엮어 놓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걸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매체를 만들자, 근데 그걸 뭐라고 칭할까? 하다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걸 ‘잡지’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때 당시에는 이름 자체도 없었죠. 어느 날 메일로 바림의 강민형 대표님이 광주문화재단에서 지원사업이 있으니 관심있으면 지원해보라고 알려주셨죠. 정말 될까 싶은 마음으로 지원했었죠. ‘절절살롱’에 오셨던 분 중에 민우씨가 마침 등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옳다구나 저분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중에 해서라고 글을 쓰는 친구와 함께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 친구도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기 때문에 글 스타일도 알고 실제로 ‘절절살롱’에 놀러 오기도 했고요. 그들을 믿고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그분들이 글을 쓰겠지 생각했고, ‘절절살롱’에 오셨던 분들에게 글을 받거나 아니면 주위의 아는 분들에게 글을 좀 받아서 책을 엮어서 내자라고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A5 사이즈에 글만 들어가 있는 정도로요. 그래서 제가 기획서를 먼저 쓰고, 민우 씨와 해서에게 만나자고 해서 ‘이거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물어봤죠. 그렇게 그분들도 얼떨떨하게 같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맨 처음에 주제 같은 거나 잡지의 큰 주제에 대한 부분은 잡아 놓고 일을 진행하면서 호별 세부적인 주제별 항목 같은 것들, 어떤 인터뷰를 할지, 어떤 필진을 섭외할지 하는 부분은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죠. 근데 저희는 자주 모이지는 않았어요. 각자의 생활이 있다 보니, 민우씨는 민우 씨 나름대로 바쁘고, 해서 씨는 서울에서 지내거든요. 그래서 해서 씨가 한 달에 한 번씩 광주로 내려오면서 그렇게 작업을 진행했었죠.

임인자                                  아까 하신 말씀 중에 ‘늘 이런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요’라는 부분이 <무명인> 잡지의 제작 과정 부분이랑 겹치는 것 같은데요. ‘예술, 퀴어, 페미니즘, 인문, 사회, 과학 등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지만,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게 지역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이목화                                  20대 초반에 미술을 다시 하고 싶어서 제가 잠깐 서울에 있다가 다시 광주로 내려왔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친했던 친구들도 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서울에서의 생활은 잠깐이었지만 막상 광주에 내려오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되게 강했어요. 사실<무명인>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생각을 했어요.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데 <무명인>을 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굳이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공간이나 플랫폼이 없다는 거?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같이 생각을 공유할 공간과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저 주위 사람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고. 공통점이나 관심사가 서로 대화가 통해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 시간, 공간이 부족하거나 마땅하지 않기에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즘 되게 많이 해요. 사람들도 어떤 사건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고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런 걸 전혀 물어보지 않는 그런 사회 분위기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일단 그런 이야기를 하면 ‘진지충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사실 ‘절절살롱’을 하면서 느낀 게 이야기를 나눌 판을 깔아주면 건강하고 젊고 재밌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구나, 이런 점을 많이 느껴요. 그건 20대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지역이다 아니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임인자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친구들은 대부분 다 서울에 있다고 했는데, 서울을 선택한 이유도 아마 있을 듯해요.

이목화                                  친구들 같은 경우는 대학교를 서울로 가게 됐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 제가 대학을 갔을 때 적응을 잘 못 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잘 놀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냥 광주가 싫었어요. 서울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했죠. 서울에 올라가 다시 미술을 시작하면서 작업실을 다녔는데 그때 배운 게 생각하는 법과 서로 다른 관심과 주제를 가지고도 부딪치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어요. 근데 광주에는 대화할 상대가 없었죠. 그 당시에는 ‘무조건 여기를 벗어나야 해’라는 생각이 되게 강했어요. 그런데 ‘바림’2에서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광주에서 활동하시는 다른 선생님들을 알게 되고 저도 나름대로 적응하며 지내니 ‘아 이곳도 이곳 나름의 매력이 있구나.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하는 점을 되게 많이 느끼고 배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장점을 알게 됐죠. 상대적으로 광주엔 뭐가 많이 없으니까 뭘 하든 선점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수 있다는 거. (웃음) 그래서 저는 처음에 <무명인>이 ‘잡지’였을 때 이게 뭐가 될 줄 몰랐기 때문에 잡지를 잘 알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무명인>을 내고 나서 보니까 이렇게 광주에서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발행되는 발행지가 없더라고요. 그런 덕을 많이 본 것도 있지 않나 싶어요.

임인자                                  어떤 덕을 본 것 같으세요?

이목화                                  우선 처음이니까, ‘아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여기저기서 관심 가져주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죠. 사실 제가 만들긴 하지만 좋은 잡지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되게 빨리 오더라고요. 광주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발행지가 없어서 이렇게 반응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좀 들고. 진짜로 괜찮고 재밌어서 주는 반응일까, 아니면 그냥 그동안 광주에 이런 발행지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생겼으니까, 젊은 20대 또래들이 모여서 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품고 있어요. 저는 창작자가 자기검열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검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번 세상에 나오면 책임을 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평소에 생각하는데,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어디까지 책임을 질 수 있을지 이 발언에 대해서 내가 감당을 할 수 있을지 하는 그런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아무래도 제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임인자                                  이 잡지를 하면서 받게 된 그런 무게감이 방금 말씀하신 생각으로 이끌게 됐나요?

이목화                                  아무래도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텍스트이고, 기록에 남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잡고 있는 톤이나 맥락 같은 것들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요. 2호에서 5·18이라던가 지역의 예술을 하는 것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을 때도 그렇고. 사실 잡지를 내기 전에 저 혼자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이런 이야기를 얘기해도 되는 걸까, 이런 식의 단어를 써도 되는 걸까,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다른 분들에게 이야기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별 신경 안 쓰는데 저는 이런 고민을 되게 많이 해요.

임인자                                  저 같은 경우는, 사실은 제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가치 기준은 ‘논쟁으로서의 어떤 예술’에 대한 것이에요. 그래서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편을 선택하고 이제 거기에서 어떤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사실은 제일 좋은 건 어떤 것들이 계속 논쟁이 되고 회자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그것이 자기가 스스로 발화하고 있을 때 그게 생명력을 갖는데, 그냥 이렇게 내놓는 것만으로는 실은 생명력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목화                                  네 맞아요. 그래서 그와 함께 고민하는 게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발화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일회성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질 방법은 계속해서 그것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2호에서 저희끼리 ‘지방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대담을 나눴는데 그 내용을 이어 전시를 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박은현님의 제의로 참여하게 됐죠. 은현님은 평소에 ‘왜 젊은 사람들이 5·18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하지 않을까?’ 하는 지점에 대해 문제 의식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갈 방법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오르골로 제작해 판매하기도 하고, 언젠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실제로 전시까지 기획하셨죠.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저는 사실 5·18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보기는 하지만 그렇게 관심을 크게 가지고 활동을 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2호에서 했던 그런 이야기들이 뜻밖에 전시로 또 이어지게 되고, 관심을 두고 실천을 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되면서 5·18을 소재처럼 소비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되게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4호에서는 퀴어문화축제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아 이것도 또 광주에서 처음 열렸으니까 너무 의례적으로 관심을 두고 다루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무명인>에서 다뤘던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면 계속 제 안에서 끌고 갈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내년에 잡지를 계속 낼지 말지인데, 만약에 한다면 앞서 다뤘던 두 가지의 주제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임인자                                  저에게도 <무명인>이 눈에 띄었던 게 아마 2호의 5·18에 대한 대담 부분 때문인 것같아요. 저는 사실 5·18사적지를 해설봉사를 하는 ‘오월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하고 있는데, 때로는 답답하다고 느끼는 건 5·18의 서사가 굉장히 남성 중심적으로 기록 되고 있고, 저는 그것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최근에 ‘소년의서’에서 <광주, 여성>이라는 책의 독서회도 했던 이유가 이제 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그런데, 마침 그런 이야기가 <무명인>에 허심탄회하게 올라와 있어서 저는 되게 좋았었어요. 그런데 저는 자기검열에 대해서 사실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감각하는 걸 스스로 믿어야 된다고 좀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만약에 그 자리에서 검열을 많이 해버렸다면, 그런 이야기는 이제 세상에 발화가 안되고 우리끼리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깐요.

이목화                                  맞아요. 그러니까 검열이라는 게 해야 할 이야기를 거르고 말고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그런 검열이라고 해야 할까요?

임인자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는 뜻인가요? 저 같은 경우는 5·18삭제에 대한 트라우마와 블랙리스트를 거쳐왔기 때문에 검열이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목화                                  저는 올해 이런 활동을 하면서 이 전에는 나에 대한 관심, 나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욕망으로 시작했던 활동이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활동반경도 넓어지고 저도 어느 정도 성취감을 느끼다 보니 이제서야 제 주변을 좀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아직 생각의 틀이 확장되고 사유가 깊어지고 하는 차원은 아니지만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도 알겠고 정말 해야 할 일 배워야 할 것들이 많구나 하는 점도 절실히 느끼고. 지금은 이제 겨우 주변을 조금 둘러볼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된 것 같아요. 계속해서 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시선과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임인자                                  아마 계속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이목화                                  원래 계획은 4호까지만 발행하면 폐간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올해만 버티면 끝난다는 생각으로 견뎠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위에서 아쉬워하는 표정들과 눈빛에 ‘좀 더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 잘 모르겠어요. 과연 내년에 감당할 수 있을까? 제가 책을 발행하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도 좋아하는 지점을 발견하며 진행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고,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계속해왔는데, 내년에도 이런 상황을 다 감당하면서 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한다면 혼자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선생님처럼요. 물론 다른 분들 이 도움을 주시겠지만, 대부분의 작업을 나 혼자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지점들이 고민이죠.

임인자                                  그런데 최근에 부산에서 독립공연예술잡지가 생겼어요. 파이플이라는 잡지인데요. 저도 텀블벅에서 후원을 했는데, 이렇게 모금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근데 사실 쉽지는 않아요. 사실 백만 원을 모금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근데 또 공적 지원으로 한다고 해도 목화씨 인건비가 안나오지 않나요?

이목화                                  네 저는.. 저는 사실 거의 무보수죠 무보수.

임인자                                  저도 사실 이 잡지 제작을 지원받게 되었는데, 지원을 받아도 저는 무보수에요. 대표는 보수를 받을 수 없어서요.

이목화                                  거의 재능기부 수준으로 일을 하죠. 저는 못 받더라도 다른 분들은 원고료를 큰 액수는 아니지만 챙겨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했어요. 그런데 제가 대표로 일을 진행하면서 생기는 문제점이, 어떤 서열이라고 해야 하나 권력의 구조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뭔가 위에 있고 다른 분들이 조금 밑에 있는 것처럼 나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았는데. 이런 상황이 왜 생기는 걸까 생각해보니 ‘기획’이라는 명칭과 제 이름을 제일 위에 넣었거든요. 이런 명칭을 구분 지으면서 생긴 것 같아요. 애초에 자연스럽게 같이 기획을 하지 않았기도 하고 제가 ‘같이 합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이게 서로 같이하고는 있지만, 행정이나 디자인 등 대다수의 일을 제가 도맡아 하다 보니 책임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지점들이 다른 느낌이랄까. 좀 그런 게 있어요. 같이 하지만 혼자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거든요. 물론 함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의지도 많이 하고, 힘들 때 도움도 많이 주고받고 좋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같이 하지만 혼자 하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좀 많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실은 누군가와 같이하는 작업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다른 이와 고민도 같이 나누고 뿌듯해하고 하는 그런 같이하는 그런 즐거움을 더 누리고 싶어서 내년에 만약에 을 한다면 또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이 할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고.. 잘 아는 사이는 또 잘 알기 때문에 어렵고, 모르는 사이는 모르는 사이여서 어려운. 결론은 늘 ‘혼자가 편하니까’로 끝나지만. 혼자 하면서 필요할 때 모였다 헤어지는 그런 방법들을 하면 어떨까 고민중이에요. 이왕 4호까지 나왔는데 또 갑자기 폐간되는 것도 좀 그런 것 같고.

임인자                                  그러면 만약 <무명인> 발간을 안 하시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이목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돈을 벌면서 내가 살 방법이 뭘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거든요. 요즘은 그런 고민과 함께 내년에 <무명인>을 공적 지원을 받지 않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해요. 모은 돈도 없고 벌이도 거의 없기 때문에, 자비 출판에 대한 부담도 있고…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그런 에너지가 나한테 있나 하는 그런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냥 학교를 벗어나서 지낼 방법. 요즘 가장 큰 고민이죠. 아마 저는 <무명인>을 안 했으면, 독립 책방도 잘 모르고 안 다녔을 거예요. 진짜 관심이 없거든요. 독립 책방에 가면 정말 남들은 독립출판물을 소비하고 열심히 보면서 흥미롭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가서 그냥 들춰보면서 ‘이걸 내가 소유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요. 괜히 갔는데 ‘꼭 사야 하는 걸까? 안 사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왠지 사야 할 것 같고, 하지만 사고 싶지는 않고 좀 그런 딜레마가 있거든요.

독립출판계의 판이 굉장히 커졌고, 다양해지면서 누구나 출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그만큼 콘텐츠가 굉장히 빈약해졌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에세이 종류가 많은데, 저는 우선 남에게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남의 이야기가 너무 TMI(영어 T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 신조어)인 거에요. ‘To Much Information’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이거 그냥 SNS 가면 볼 수 있는 글인데 싶은 것도 많고, 내가 굳이 남의 일기장을 돈 주고 사야 하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보다 우선 제가 그런 걸 종류의 창작물을 안 좋아하는 취향이라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제가 딱히 독립출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주위에서 <무명인>을 독립출판이라고 분류하고, 저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독립출판이라는 카테고리화에 묻어가고는 있는데. ‘내가 이런 사람인데 계속 이런 걸 해도 될까? 이렇게 세상 무관심한데, 잡지도 잘 안 보는 사람인데’ 하는 딜레마가 있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요. 책이라는 게 사실 어떻게 보면 되게 아날로그 한 매체잖아요.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이런 매체가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력과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 많은 의심을 해요. 사람들이 무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져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만약 이걸 돈을 받고 팔았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볼까?’ 하는 그런 고민이 있어요. 이게 언제까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싶어요. 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책을 안 보고, 되게 빠르게 세상은 변하고 영상이나 뭐 이런 거에 다들 관심을 두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계속 출판을 하고, 책방을 하고 그러는 걸까? 그런 생각도 좀 들고… 아직은 이게 유효하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걸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그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이 있어요.

임인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래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이목화                                  음. 너무 의식하지 않고 행해지는 어떤 그런 것들을 관찰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충장축제’나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이라던가 하는 것들이요. 제 개인적으로 다른 축제와 크게 차별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굳이 여기서 또 하는 것 같거든요. 뭐 무슨 지역축제라고 해서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콘텐츠들이 전혀 새롭지 않고, 콘텐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들이 되게 많다고 느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지켜보고 있어요. 그와 더불어 요즘 광주에 문화기획자들이 되게 많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청년 기획’이나 ‘문화 기획’, ‘컨설팅’ 이런 단어가 자주 보이는데 기획하고 생성되는 콘텐츠라던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문화라는 게 좀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다양한 영향을 받아 생성됐다면, 요즘에는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데 있어서 정말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특히 ‘도시 재생 사업’이라고 하면서 일컬어지는 많은 장소, 동명동이라든지 양림동 같은 경우도 그렇고.

임인자                                  저도 공감하는 게 광주가 너무 이런 자본이나 제도에 포획된 느낌이 있어요. 어떤 주어진 자본과 환경 아래서 기획하는 건 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음.. 그거에 광주가 너무 길들어 있구나. 그래서 실은 창작자, 예술가들이야말로 사실은 이 세계를 펼쳐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기획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많이 없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 같은 경우도 이제 어떤 비평이나 담론 이런 게 필요해서, 이제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지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이런 상황이 좀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잡지를 만들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나의 계기이기도 하죠.

이목화                                  내년에 이 잡지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글을 쓰는 분들께 일정량의 원고료를 주지 못하면 안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도 있어요. 여전히 예술인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되게 많잖아요. 너무 당연한 문화처럼 여겨지고. 물론 인식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그런 지점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느껴요. 아무리 친하고 부담 없이 부탁할 수 있어도 저는 무급으로 일을 도와주거나 도움받는 그런 건 되도록 안 하고 싶거든요. 사실 <무명인>은 결과물 자체의 퀄리티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했어요. 결과물에 투자하는 것보다, 일정량의 원고료를 지급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여태까지의 결과물들은 자신이 받아야 할 몫, 정당한 임금보다도 결과물이 상대적으로 너무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화가 컸고, 그런 예시는 이제 너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작은 잡지마저 앞선 사례 중 하나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아직은 젊으니까 좋으니까 돈을 받지 못해도 너무 억울하지는 않은데, 계속해서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일하기 싫기 때문에 계속 바뀌길 바라고요. 이 문제는 서로 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이런 문제는 연극 공연 쪽도 심하면 심했지 없진 않을 거로 생각하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좀 우리가 다 같이 생각을 하면서 지원사업에서도 계속 요구하고, 다른 분야에서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척이 느린 것 같기는 해도 작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예술계 종사 노동자의 노동량에 부합하는 합당한 임금을 주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임인자                                  네. 적절하고도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무명인>이 계속되길 바라고요. 오늘 긴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 임인자 (발행인/편집장)

daeinza@hanmail.net


바림 레지던시 포스터 「큐레이터를 부르는 법」 ⓒ 바림 (barimgwangju) 

전시 「우리는 돌을 굴리겠지」ⓒ 이목화 제공


1      2017년 8월부터 10월까지 진행 중인 ‘바림 큐레이토리얼 레지던시(Barim Curatorial Residency)’에 큐레이터 6인 중 한명으로 참여했다. https://www.facebook.com/jeoljeolsalon (편집자주)

2      바림은 광주에 기반을 둔 다양한 예술장르의 작가들의 모임이자,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예술공간, 미디어 공간, 작업실이다. 2013년 10월 설립, 2014년 3월 오픈하였으며, 추상적인 예술장르부터 신체적인 예술장르까지 모두 아우른다. 기존의 장르를 벗어난 예술작업, 진행성에 초점을 둔 예술작업을 통하여 예술인들과 시민의 공동체를 조성하고, 리서치를 통한 예술 교류를 지원한다. 다른 장르와의 개입 또는 초월을 통하여, 현대예술과 밀접히 맞닿아 있으려고 노력하며, 완성보다는 과정, 토론에 중점을 둔다. 광주 동구의 예술의 거리와 아시아문화전당 옆에 위치하고 있다.     https://barimart.wordpress.com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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