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낙하산 착륙장?

축제가 낙하산 착륙장?

관광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행위이다. 안산시 관광 홍보 대사가 예술감독까지 겸직하면서 안산을 관광 도시로 만들려고 작정한 듯하다. 과연 안산은 그들의 뜻대로 관광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사건은 2019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졌다.

2018년 7월 윤화섭 안산시장이 취임하고, 8월 탤런트 이광기를 관광 홍보 대사로 위촉했다. 당시 예술감독 선정 과정에서 ‘적격자 없음’으로 인해 3차 공개모집까지 진행되었다. 이후 10월 관광 홍보 대사인 이광기는 예술감독에 위촉되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예술감독 선임에 관한 짧은 선정 기사를 읽으며 ‘관광 홍보 대사가 예술감독…?’ 그가 어떤 경험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보통은 경력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맡았다고 한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리예술과 관련된 경력은 전무하다. 안산시가 국제거리극축제의 정체성을 바꾸려고 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황당한 인사를 단행하다니…또 그렇고 그런 낙하산 인사인가. 정치인들이 권력만 잡으면 곧바로 날리는 낙하산에 의해 뭉개지고 파괴되는 문화예술계의 생태계와 성취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는 이제 신물이 난다. 이런 정치적 행태에 제동을 걸 수는 없는 것일까 하던 찰나에 축제 감독 심사과정 정보공개 요청이라는 절차가 있다고 하여 요청했지만, 심사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2018년 11월 15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안산시의 답변을 살펴보면 “2018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거리예술의 본가로서 위상을 다지고 풍성한 프로그램과 예술성 있는 작품으로 국내외 관객들에게 찬사와 사랑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현행 축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새로운 가능성을 넓혀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거리예술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축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의 지점’인데,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다. 더 나은 축제를 위해 필요로 하는 새로운 비전에 대한 고민은 동감하지만, 그 진행 과정이 과연 정당한가는 다른 문제이다. ‘전반적인 검토’를 갑자기, 느닷없이, ‘깜깜이’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 검토인가.

상식적으로 ‘검토’란 다양한 각도와 맥락에서 여러 사람이 생각과 의견을 나누면서 면밀하게 분석하고 찾는 것을 말한다. 정말 제대로 된 검토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러한 예술감독 선정 과정 전에 공청회를 열어 예술가, 시민, 축제 전문가들이 모여서 검토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검토와 점검으로 인해 안산시 홍보대사 이광기가 예술감독이 되었는지에 대해 심사 정보 공개를 요청해도, 비공개로 일관되게 답변을 거부하면서 축제에 대해 검토하고 점검했다고 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왜 비공개인가.

2019년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비전을 알 수 있는 예술감독 선정에 대해 알고 싶다는데 이를 비공개한다는 것은 뭔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닌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비공개로 일관하면서 시간을 벌고 뒤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불통 행태이다. 또한 문화예술계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다.

불통의 방식으로 응대하는 안산시에 맞서 거리예술가들이 축제 보이콧과 일인 시위를 11월부터 시작하였다. 안산시는 이후 축제 자문위원회 명단을 공개했는데 자문위원 중에 어디에도 거리예술 관련 전문가는 없었다. 안산시 스스로가 ‘거리예술의 본가’로 인정하는 축제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알 수 있으며, 자문위원에 거리예술 전문가들이 없다는 것은 축제의 정체성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안산시는 1970년대 시화반월공업단지의 배후도시로 조성된 계획도시로 안산시의 발전은 공단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노동자들과 함께 성장한 도시는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인해 102개국 8만여 명의 외국인이 공존하는 다문화의 도시가 되었다. 안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시화반월공단, 다문화, 세월호의 도시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다양한 레이어를 가진 도시의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아픔을 담을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자 플랫폼으로서의 거리예술축제는 축제를 통해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거리예술을 통해 기억하는 도시의 시간과 이야기는 우리의 문화예술적 자산이자 진정한 가치이다. 올해로 15회를 맞은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도시의 문화적 위상의 ‘바로미터’이자 상징성이 되었다.

사람들이 안산으로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풍경을 보러 오는 것일까? 지난 도시의 기억을 되새겨보면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예술가와 시민들이 안산을 찾아왔고, 거리예술축제를 위해 전 세계에서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방문하고, 원곡동의 다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방문했고, 단순히 풍경을 관광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정치인의 개인적인 목적과 취향이 더 이상 안산이 가진 문화예술적 가치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실패담을 가지고 있다. 과천축제가 말축제로 바뀌고,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거창연극제의 위축 등 호평을 받으며 구축해온 문화예술가들의 노력은 정치인의 편향적인 문화 인식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임기가 1년인데 해보고 안 좋으면 다시 하면 되지 않느냐?’ 식의 안일한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무너진 댐을 보수한다고 그 안에 담긴 물을 한순간에 다시 모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물과도 같은 것이다. 오랜 시간 내리면서 모인 물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원재료 같은 것이다. 실패담도 성공담도 그야말로 면밀히 검토하여 102개국의 외국인과 내국인이 공존하는 도시, 시화반월공단의 노동자의 도시, 세월호와 선감도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도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리예술의 플랫폼으로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그동안 쌓아온 성취와 가능성을 이어가야 한다.

축제 예산이 공공의 세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와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문화예술만의 예외적인 자율성과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특권의식처럼 비칠 수 있다. 공공의 자산이 투여되는 축제의 현장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반영되는 것은 분명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상호 공존보다는 다름을 배척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다. 예술은 생래적으로 그러한 배타적 방식에 질문을 던지면서 또 다른 상상력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이슈에 접근한다. 안산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그리고 세월호를 둘러싼 이견들이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와 문화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거리예술은 더 많은 상상력으로 도시의 여러 문제들의 해결에 영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가치를 더는 정치인과 몇몇의 개인의 욕심으로 허망하게 훼손하는 실패는 그만하자. 여기저기 똑같은 콘텐츠를 보자고 사람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안산만의 특별하고 의미 있는 문화예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안산의 새로운 문화 가치의 생산 공장인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그래서 지켜야 한다.

오랜 시간 축적한 노력과 경험이 존중받는 사회가 상식이 통하는 행복한 사회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개개인의 노력과 경력을 무시하는 듯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낙하산 인사는 축제의 결과 유무를 떠나서 상식을 깨는 행동이다. 공기처럼 존재하는 상식이 깨지면 사회의 균형도 깨진다. 반복되는 불공정한 낙하산 인사가 가져오는 예술가와 시민의 분노를 안산시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정치와 예술이 상호 공존하는 방식은 과연 없는 것인가? 예술은 정치를 통한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치는 예술의 상상력과 자율성, 유무형의 가치 창출을 존중해야 한다. 하여 비공개, 일방통행식 행정처리의 비민주적 방식을 이번 기회에 직시하여,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타당한 절차의 공개적인 공유와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기를 바란다. 문화예술 현장은 더 이상 정치인의 낙하산 착륙장이 아니라 시민과 예술가 그리고 정치인이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글. 이미경 (거리예술평론가, 안산시민)

sealove502@hanmail.ne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