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통맹-대구포크문화’ 2019년에 바란다

‘대구 포크문화 1번지’로 불리는 방천시장 옆 김광석 벽화길

지금도 지역 버스킹문화의 산파역이다. ⓒ이춘호

 

‘달빛통맹-대구포크문화’ 2019년에 바란다

 

나는 대구의 포크문화에 관심이 많다. 특히 포크뮤지션의 절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들이 절망하면 현실은 별로 희망이 없는 거다. 통기타 가수가 ‘비수’처럼 품고 다니는 포크(FOLK), 이건 하나의 저항의 상징. 포크가 죽는다는 건 저항의 열기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지역 포크 음악가들은 절벽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 백인 음악의 총아인 ‘컨츄리’, 흑인 민요의 백미인 ‘블루스’의 합작품인 포크. 이게 한국 포크로 발화된 건 1964년 서울 무교동에서 생겨난 ‘세시봉’ 때문이다. 그걸 축으로 1967년 송창식와 윤형주를 축으로 한 ‘트윈폴리오’가 한국 첫 포크트리오로 태어난다. 하지만 실제 국내 첫 포크트리오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1963년쯤, 신중현이 ‘애드훠(ADD4)’란 그룹사운드를 만들 때 대구에서 파격적인 그룹사운드가 탄생한다. 바로 ‘마이스(Mice)’였다. 북구 팔달교 근처 성신고아원 출신 고아 10명이 만든 캄보밴드였다. 이후 1965년 청구대(영남대 전신) 출신 방성용·하경안·백창대가 대구 첫 통기타트리오 ‘바보스(THE FOOLS)’를 결성한다. 바보스는 66년 12월1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동양방송 주최 제1회 대학 재즈페스티벌에 출전, 3위를 차지한다. 전호영 대구YMCA 사무총장(작고)은 66년 레크레이션을 위한 싱어롱 교실을 오픈한다. 특히 이 무렵 지역 대학교 연합 포크뮤직연합서클인 ‘블루 스카이’도 태동한다. 

이런 흐름을 안고 한국 포크의 또 다른 전설이 된 가수 김광석.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난다. 그의 탄생지는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다들 수성교 바로 옆에 있는 대봉동 방천 시장 옆에 조성된 김광석 벽화 길을 고향으로 잘못 알고 있다. 종일 이 길에선 김광석의 히트곡이 꽃 핀다. 그 옹벽에는 김광석 관련 노래와 그의 일대기에 관련된 작가들의 벽화가 섬뜩하고 리얼하게 칠해져 있다. 이젠 전국구 포토존. 지난해 350m의 좁은 골목길에 무려 146만 명이 다녀갔다. 주말에는 5천여 명이 몰린다. 관광객 대부분은 외지인이다. 지난해 6월 김광석 길 끝자락에 문을 연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는 새로운 핫플레이스. 개관 1년도 되지 않아 6만여 명이 다녀갔다. 여기에 가면 김광석의 자필 악보, 일기, 미공개 사진 등 100여 점의 유품을 만날 수 있다. 

김광석 한 사람 때문에 임종 직전이었던 시장통은 핫플레이스가 됐다. 커피숍 등 새로운 60여 업소가 들어서 상가번영회까지 형성된다. 이 길은 수성못, 동성로 등과 함께 대표격 버스킹 존이었다. 현재 가장 활동적인 버스커는 주말마다 나와 ‘이어 부르기 버스킹’을 연출하는 구본석·손정호·채의진·조진영이다. 

급기야 지난봄부터는 문화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하는 ‘김광석 음악 버스(더 플레이 버스)’가 운행된다. 김광석을 테마로 한 국내 최초 콘텐츠형 시티투어버스다. 시티투어 버스에 문화 예술 공연을 접목한 게 특징이다. 버스 내부는 음악감상실 형태로 꾸몄고 전문 DJ와 공연자가 김광석의 음악 세계와 인물사를 음악과 함께 들려준다. 기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김광석이 래핑 된 버스 안에는 디제이 박스까지 마련되어 있다. 

# 방천골목오페라축제 

김광석 특수는 연이어 전국 첫 방천 골목 오페라축제로 이어진다. 올해 두 번째 열린 ‘방천 골목 오페라축제’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관 주도 문화행사에서 벗어나 동네 주민이 주역으로 참여해 새로운 공연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2018년 6 월14~16일 방천 시장 곳곳에서 펼쳐졌다. 메인 공연인 골목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비롯해 칸초네 콩쿠르, 갈라 콘서트, 프린지 공연 등이 이어졌다. 조직 위원장 김상환과 영남대 성악과 교수 이현이 손을 잡고 사고를 쳤다. 카페 ‘선댄스팜’ 앞에 야외무대를 설치했는데 의자를 300개 정도 놓았다. 200명 정도의 관객들은 서서 보아야 했다.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골목이 갖는 매력과 상징성이 있었다. 

특히 방천 시장에 터를 두고 사는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점도 상당한 성과이다. 합창단에도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자잘한 아웃소싱이 풍성했다. 무대 세트는 김태경 백신 디자인 대표, 의상디자인은 ‘선댄스팜’ 김희정 대표가 맡았다. 전야제 때 가든파티를 열었는데 후원자, 관계자,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때 촙촙롤스, 스튜디오 H602, 스튜디오 브라켓, 르플랑, 대경맥주, 치맥킹, 웰메이드 초콜렛 등이 음식까지 협찬했다. 여전히 재원조달이 가장 큰 문제. 지난해 5천여만 원, 올해 6천여만 원으로 진행했는데 지인이나 여러 단체에서 후원을 받아서 겨우 꾸려가고 있단다. 

#달빛포크콘서트와 대구포크페스티벌 

대구는 유네스코 선정 음악창의도시. 오페라, 뮤지컬, 포크페스티벌 등이 기반을 잡았다. 이게 두 개의 포크페스티벌과 시너지효과를 올리고 있다. 8월27일부터 3일간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대구포크페스티벌(4회), 6월9일 수성못 상화동산 특설 무대에에선 제3회 ‘달빛통맹’1(통기타동맹)콘서트가 열렸다. 대구포크페스티벌은 대규모이고 서울의 유명 포크 뮤지션 등이 메인 무대를 장식한다. 하지만 ‘달빛통맹’은 철저하게 ‘로컬(Local)’ 위주다. 대구와 광주지역 싱어송라이터, 다시 말해 영호남 로컬 뮤지션 중심이다. 대구·광주시의 달빛동맹 일환으로 함께 지원하는 ‘토종 포크 뮤지션 보호프로젝트’다. 이와관련 2016년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창립된 ‘달빛포크협회’가 영호남 포크 인프라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음악 좀 하는 이들은 1950~80년대 대구는 ‘한국 대중음악의 용광로’ 같은 곳이라 평가한다. 중구 향촌동에서 시작된 비어홀과 바의 생음악문화의 저력은 50년대 초 대구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던 ‘공군홀’과 수성2가동에 있었던 ‘육군홀’ 문화와 무관하지않다. 그 공간이 한국 대중가요는 물론 클래식 음악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흐름은 뒤에 국일·대화 등 기라성 같은 대구발 카바레문화, 이어 대구가 가장 독보적이랄 수 있는 ‘회관문화’까지 탄생시킨다. 이후 나이트클럽 밴드와 음악다방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중구 남산동은 한강 이남 최고의 ‘악기 문화의 성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대구 포크는 그 흐름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그런 전통을 딛고 대구의 첫 포크 전문 라이브 클럽이랄 수 있는 ‘해바라기’가 70년대 교동시장 근처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또한 그 어름 김진규 DJ를 축으로 한 BBC FM이 혜성처럼 등장해 10여 년 대구의 팝문화를 주도한다. 

# 하지만 지원성 행사만 풍년 전문 공연은 흉년 

최근 지역 포크계의 화두는 버스킹. 하지만 버스킹 문화는 더 세련되게 특화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수성못 일주 산책길은 전국 최강 버스킹 장소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상당수 버스커는 생계형이고 너무 반주기에 의존하고 고출력 앰프에 길들여져 있다. 과도한 음향 때문에 온갖 민원을 발생시킨다. 출력 제한 규정을 넘어 앰프 없이 기타 한 대만으로 공연하는 버스커가 늘었으면 좋겠다. 향후 실력파 뮤지션의 활동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라이선스 제도를 정착시킬 차례다. 

밝은 눈으로 보면 대구의 포크는 아직 ‘동면기’. 너무 지원에 의존한 행사 일변도다. 뮤지션의 자기 공연은 없고 행사에 동원되고 있다. 뮤지션의 실력이 녹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지역의 라이브 클럽은 ‘취객의 노래방’으로 추락 중이다. 포크 도시라 하면서도 정작 포크 전문 클럽은 전무한 상태. 일부 포크뮤지션은 노래 손님의 반주자로 전락했다. 달빛포크협회도 이 점을 중시하고 있다. 머잖아 힘을 합쳐 포크 전문 아트홀을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향후 ‘달빛통맹’이 대한민국 제2의 포크 전성시대를 수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달빛포크협회 대구대표)

wind3099@hanmail.net


1      광주대구통기타동맹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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