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꿈을 꾸세요

보헤미안 특별 공연 ⓒ 임웅 제공

작은 꿈을 꾸세요.

먼저 《행진:지역공연예술비평플랫폼》의 창간을 환영합니다. 생각을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욕구가 컸기에 비평인지 비판이지 모를 말들을 뱉으며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술자리 안주처럼 씹어대는 비판보다 서로의 작업에 도움을 주고 격려하는 말들이 오고 가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광주에서 음악하기’라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역이라는 말이 반갑지는 않습니다.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고, 서울 아니면 지방으로 대다수를 열등감으로 떠미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저는 변방에 살면서 음악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을까요. 저는 말띠니까 제주도로 가야할까요? 아, 입버릇처럼 말장난이.. 

고민은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제가 광주에서 음악 하는 사람으로 사는 동안 끝나지 않을 고민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뭔가는 하고 싶었고, “그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 문장에서 방점은 ‘하자’에 찍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뭐라도 좋으 니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날로그 밴드 바닥프로젝트의 「할 수만 있다면」 노랫말을 잠깐 빌려올게요.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있는 일을 당장 때려 치고 

할 수만 있다면 

커다란 3000cc 바이크를 사서 

할 수만 있다면 

여기 저기 떠도는 세계여행 떠나고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건 정말 많다” 

제게 주어진 지면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하다가 이 노래를 떠올렸어요. 희망과 목표는 다른 것인데도 그 말이 주는 희망감 때문에 시시하고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반문했습니다. 큰 꿈이라는 함정 같은 그런 것들 말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음악 하는 동료들도 그렇고, 여러 작업을 하는 예술인들, 평범한 직장인들과 친구들, 그들의 가족들, 또 아이들 심지어 개나 고양이도 그런 것 같습니다. 희망을 희망하기 때문에 자신의 환경에 비해 크고 대단한 어떤 것을 원하면서도 희망하는 자신이기에 면죄부를 주고, 희망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비관하는 모순의 고리 속에서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어떠냐고요? 평범하디 평범한 한국의 변방, 광주에 살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보다 스크랩을 좋아하고, 저보다 대단한 것들을 부러워하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꺼덜 거리고 다니는” 그저 평범한 음악인이었습니다. 

원대한 목표는 없었고, 그냥 정말 좋아서 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피곤해지고 스트레스도 받게 되니 이러다가는 음악이 싫어질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제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정말 좋아서이니까요. 그래서 직업 음악이지만 취미처럼 해보면 즐겁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길거리 버스킹이라는 것을 해보고, 시장에서 상인들 이야기를 듣고 노래로 만들어서, 그걸로 음반도 만들고 공연도 꾸준하게 하게 됐습니다. 느끼셨나요? 앞 문장의 방점은 ‘꾸준하게’에 찍혀 있습니다. 

꾸준하게 라는 말을 ‘지속’으로 바꿔놓고 이어가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날로그 밴드 <바닥프로젝트>가 매달 기획하고 출연하는 공연 ‘골방음악회’가 바로 지속하는 공연의 실험이었습니다. 맨 처음 밴드 멤버들에게 제안했을 때 마음은 두 가지였습니다. 광주에서 한 팀이 계속 출연하는 장기 공연을 만들어 보자, 돈이 없어도 사람만 있으면 계속 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고요. 하나만 덧붙이자면, ‘쉬지 말고 백 번만 해보자’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첫 번째 공연은 관객 숫자를 기준으로 둔다면 실패였습니다. 대인시장 어느 작업실에서 열었고, 공연자 5명에 도와주는 사람 3명, 그리고 관객 3명이 전부였습니다. 방법도 모르고 그냥 했어요. 모두가 처음이었으니까요. 공연자보다 관객이 적었고, ‘골방’이라는 이름처럼 앞자리 관객에 침이 튀어갈 만큼이나 거리가 가까웠습니다. 

이후 8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로 어제 아흔아홉 번째 ‘골방음악회’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니 아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무렵엔 100번째 골방음악회를 준비하거나, 이미 끝이 나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아흔아홉 번째 공연 포스터를 그리고 있는 저에게 “열정적으로 공연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부럽습니다”고 말씀하시기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열정만으로는 못 하겠더라구요.”라고요. 열정만으로는 너무 너무 힘든 것입니다. 열정을 삭제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열정은 늘 같은 온도로 펄펄 끓는 건 아니니까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하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꺼지지 않게 하는 노력이죠. 물론 더 풍부한 환경에 좋은 재능이 있는 능력자들(이라고 썼지만 그런 사람은 누구일까요)이라면 다르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대단하고 멋있는 공연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은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썼던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지속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냥 아흔아홉 번이 있더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쌓아온 시간에 저희가 만든 공연을 좋아하는 분들이 생겼고, ‘골방음악회’와 비슷한 공연도 많이 생겼고, 정기적으로 여는 것에 때를 기다리며 공연 소식을 묻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처음에 이런 아이디어를 말했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할지, 말지를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큰 고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즐거웠으니까요. 우리가 함께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어느새 그 매력에 푹 빠져있었거든요. 처음에 목표했던 ‘100회’를 앞둔 골방음악회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거나 충성하는 팬덤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자랑스럽습니다. 만약에 지역에서 음악 한다고, 창작곡 만들어 부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처음에 관객이 적다는 등등의 이유 때문에 시작도 안 했거나 하다가 포기했다면 어땠을까요. 그 결과는 저도 모릅니다. 저희는 시작해버렸고, 이제 막 끝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영향력이라는 말을 흔히 쓰던데, 그것의 실체는 모르지만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단하고 또 대단한 치적을 자랑하는 글도 쓰지만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다릅니다. 여기까지만 읽고서 자기 자랑이구나 싶은가요? 그건 아닙니다. ‘골방음악회’라는 공연 형식은 크고 작게 실패했고, 예상하지 못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잘못은 고치고, 바꾸고 문제에 대처하고 그러면서 우리들 스스로가 변화(또는 성장이라고 할까요?) 목표에 가깝게 와 있습니다. 

최근 광주에 다양한 문화 공연들이 있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도, 주말에도 이곳저곳에서 음악공연들이 열립니다. 양적으로는 풍성해진 듯 보이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렇게 열리는 음악공연이 지속하지 못하고 매번 소비되며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지원 사업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작동하는 탓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원 자체의 본래 목적인 창작과 활동을 촉진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 구조에는 지원기관의 관행적인 태도가 있고, 음악 하고 공연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패턴이 있습니다. 습관처럼 비슷한 작업을 선보이고 새로운 창작물 없이 대표곡이나 대표 작품 하나로 물건처럼 자기를 파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적은 값에 공연을 다니며 자기 생계를 유지하는 것,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멀리 보면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보다는 스스로 공연하는 장을 만들고, 거기에 관객을 초대하고 자기를 내보일 수 있는 작은 기회들을 만들어내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 중요할지 모릅니다. 만들었다고 끝은 아닙니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아요. 그렇지만 실패를 경험한 이후에 성공할 확률은 높아집니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부르고, 내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용기, 그리고 실패할 용기와 실패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 추진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음악하는 자신과 자신의 진짜 생활이 일어나는 곳인 지역을 이해하고 창작물로 녹여내는 독창성도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하니까 되더라, 그럼 나도 되겠지 뭐 하는 생각은 너무 단순합니다. 실패하겠지만 있던 것들을 조금씩 바꾸고, 스스로를 대중 앞에 노출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다 보면 고유한 어떤 것, 콘텐츠라고 부르는 것이 생겨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당신도 이렇게 하세요’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뜻입니다. 

저는 음악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가 머무는 지역에 더 많은 문화와 공연이, 더 많은 딴따라가 생존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이라 안 되고, 누구보다 못나서 안 되는 것보다 그런 작은 힘들이 잘 드러나는 공연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만드는 사람들, 음악 하는 사람들, 또 그런 시간을 기꺼이 누리고 싶은 관객들과 만나 차 한 잔, 술 한 잔을 사이에 놓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즐겁게 밤새는 날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은 시작에 꺼냈던 바닥프로젝트의 「할 수 만 있다면」의 가사를 다시 불러내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로 뿌듯한 2019년이기를 바랍니다. 

작은 꿈을 꾸세요. 

“할 수 있을 거야 

때려 치진 못해도 휴가는 낼 수 있고 

할 수 있을 거야 

조그만 스쿠터는 탈 수도 있지 

할 수 있을 거야 

짬짬이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고 

할 수 있을 거야 

생각하는 모든 것들” 

글/사진. 임웅 (바닥프로젝트)

superwoong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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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프로젝트 99회 골방음악회 ⓒ 바닥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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