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는 문화예술 가교자가 보고 싶다

발로 뛰는 문화예술 가교자가 보고 싶다

 

광주에 살면서 광주를 얼마나 알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광주 사람이라면 광주 시민들의 삶의 방식을 잘 알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저 정치인이나 시장만 잘 알면 되는 게 아니고 광주 시민 스스로가 잘 알아야 시민의 심부름꾼인 정치인들과 시장에게 심부름을 잘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위정자들이 속이려 들어도 어쩔 도리 없이 당하게 되고 자신들보다 더 못 난 이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광주를 예향의 도시라고 한다. 민주의 도시, 인권의 도시라고 한다. 예향 광주의 문화적 향유는 물론 생산의 거점까지도 시민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광주의 민주가 그저 5.18민주화 운동에서 기인해 온 흘러간 역사의 자부심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형인 민주도시, 인권도시, 예술의 도시 광주의 실천력을 기반으로 한 자부심임을 시민 스스로가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도록 시민에게 길을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광주시민의 사회 정치적 경제 문화적 환경과 정세를 올바로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의 중요성이 여기서 나타난다. 

올바른 문화적 정보와 비평을 시민과 공유함으로써 시민 스스로가 문화예술의 생산의 영역까지 관심을 갖게 하고 한 단계 높은 광주시민의 문화 수준을 형성해 주는 플랫폼들이 다양하게 상존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 중심적인 문화예술 지향에 치우쳐 지역의 소중한 창작예술들을 시민에게 잘 알려주지 않으면 시민들은 당연히 자기 지역의 문화예술의 가치는커녕 진행 과정조차 모르게 된다. 

시대적인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시민들이 예술을 대하는 입장이나 태도들도 과거에 비해 많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더디게 변화해 왔지만 많이 발전해 있는 현실이다. 시민들이 제대로 된 예술을 향유하려 함으로써 예술 공연과 전시에 관련한 비용도 제법 지출이 많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면서 산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팔다 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10여 년 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전 같으면 관람만 하고 가는 경우가 거의 태반이었다면 지금은 사려고 작정하고 오는 고객들도 많아졌다. 

가난한 동네라서 그런지 과거엔 전라도의 척박함만큼이나 예술적 가치에 돈을 투자하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했다. 심지어 연극 한 편 보는 것도 돈 아까워서 쩔쩔매다가 혹시 초대권이라도 한 장 얻을 수 없을까를 궁리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옛 시절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머지않아 ‘아시아문화전당’도 제자릴 온전히 잡아가게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저 알리기만 하는 정보의 알림 지기만이 아닌 제대로 된 올바른 공연물들과 가치 있는 창작행위 등을 잘 설명하고 잘못된 것이나 아쉬운 것들은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사랑의 매질 또한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장에서 진행되는 문화행사들은 생각 외로 널려있다. 시민들의 무관심이 한 몫을 하거나 이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예술창작의 가교역할이 부실하거나 하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없이 많은 문화예술은 시민으로부터 멀어지고 만다. 그저 ‘아시아문화전당’을 위시한 커다란 관공서에서 진행하는 정기적인 문화공연이나 전시 외엔 접할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발로 뛰는 문화예술의 가교자가 보고 싶다. 소개하고 싶은 행사마저 전화로 문의하여 자료 요청하고 적당히 갈겨대는 문화행사의 전달역할은 하지 말자. 그런 행위는 수십 년간 봐 왔듯이 일반 언론에서 쉽게 다룰 수 있다. 

직접 만나고 작품의 생산 창조 및 생산과정에서부터 공연이나 전시기획을 행하게 되는 시점까지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다 소상히 알려줄 책임과 사명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야 비평도 근거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하는 것 없이 불평만을 늘어놓게 된다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기획과 전시나 행사 공연들을 직접 감상하고 감상한 주체들에 의해 쓰이는 기사를 보고 싶다. 그들이 보고 느낀 공연의 소감이야 말로 소통 발전의 진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 갖가지 변수가 많아지는 야외 행사는 더더욱 감상하고 시민과 괴리되지 않았는지, 준비는 잘 되었는지, 작품의 질은 얼마인지를 스스로 느끼고 시민에게 전달해야 올바른 비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공유하고 싶은 문화예술은 아낌없는 칭찬으로 문화예술 행위가 세금 낭비로 흐르는 것은 맵짠 비평으로 그렇게 말이다. 

우리지역의 문화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비평가들을 보고 싶다. 서울 중심의 문화적 생산물에 현혹되어 위만 쳐다보게 되는 시각의 편중성에서 탈피하고 우리 지역의 창작예술에 대하여 관심도를 집중했으면 좋겠다. 우리지역의 감동은 곧 전국의 감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 또한 있어야 한다. 이는 창작자와 문화예술의 향유자인 시민 그리고 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비평매체들이 똑같이 견지해야 할 목표쯤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서로가 얽힌 곳이 있으면 풀어주고 과하게 넘친 것이 있으면 적당히 걸러주고 잊고 넘어가는 것이 있으면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는 그런 문화예술의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생산과 향유 그리고 그 사이의 가교자. 이 삼자가 모두 비평의 눈을 뜨고 우리지역의 문화예술을 실행하고 보듬을 때 적당주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 보조금을 지원받아 적당히 행사를 치르고 마는 그러한 행사도 차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비평은 사랑을 전제로 출발한다.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다면 비평 또한 무의미하다.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이라는 나무를 가꾸어 가는 마음으로 새해 벽두부터 발로 뛰는 우리였으면 하는 생각을 전하면서 모두에게 무궁한 발전과 보람이 가득 찬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 박종화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 서예가, 공연 연출 총감독)

pch1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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