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터무늬 위에서

고유한 터무늬 위에서

해가 진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동네에서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동성고 뒤를 둘러싼 산자락으로부터 지는 해의 잔향이 온 동네 구석구석에 스민다. 과거 임곡동 주변 월봉서원에서 작은 카페를 잠깐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매일 늦은 오후 황룡강 주변 갈대밭 사이로 저무는 해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김없이 내일 해가 뜰 것이다. 매일 아침 무등산을 벗겨내며 태양이 떠오르고 곧이어 안쪽 구석구석으로 온전한 볕을 뿌려줄 테다. 이 하루 사이 무등산자락의 서쪽에서부터 영산강에서 갈라져 나온 황룡강의 동쪽까지 우-좌로 횡단하는 볕의 축복을 받는 구역에서 나는 지금 살고 있다. 너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곳, 기실 더울 때는 제법 덥다마는 살아갈 만한 곳. 이곳 광주에서 나는 용케도 30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살아왔는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나는 이곳을 문화수도라고 지칭하는 것을 들었다. 예향(藝鄕)과 미향(味鄕)의 도시,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풍류(風流)를 읊고 유려한 글솜씨를 뽐내던 예인들이 많던 곳.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언젠가부터 문화수도 광주라는 기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라는 말이 하나 더 붙었다. 이러한 설명들이 싫지는 않았다. 내 고장을 소개할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깐, 하지만 타 지역에 가서 내 고장을 소개할 때 전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분명 이에 대한 까닭이 있을진대, 물론 조사가 부족했던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했지만 사실 몸으로 체감하며 자긍심을 느낄 수 있던 적은 없었다. 타인이 어느샌가 입혀준 옷처럼 문화수도라는 단어는 나에게 여전히 낯설고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의 도시이자, 민주화의 성지라는 말을 들었다. 해마다 동남아시아 쪽에서 민주화의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 몇천 명의 사람들이 다녀간다는 말도 들었다. 광주 시민으로서 5·18에 대한 인식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험적으로 체득하는 가치관은 아니다. 나 또한 대학 교양수업으로 학습하여 이후 오월창작가요제의 사무국 업무와 5·18의 전야제에 참여하면서 역사관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광주가 가진 비단 슬픔뿐만 아니라 자긍심, 분노, 혹은 열등감까지 혼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5·18에 대한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입장 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관된 집단 사이의 갈등 장면도 목격했었다. 전야제 참여 시민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줄어가고, 5월이 자나면 바람빠지듯이 순식간에 줄어드는 방문객들과 정치적 이슈들의 급감도 보아왔다. 한편으로는 그 와중에서 5·18 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신선한 움직임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집단도 있었다. 

광주는 전라도의 대표도시이자 인구 150만 도시(실제로는 148만)라는 사실, 국제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품고있는 도시, 가을에 열리는 전국 규모의 충장 축제, 기아자동자 공장,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적 개최 등 내가 사는 곳을 상징하는 많은 행사와 가치들이 들어 있고, 또 나는 그러한 가치들을 너무도 쉽게 끌어와서 광주를 설명하고 또 사람들에게 소개하고는 했다. 그 무수한 소개 속에서 외려 내가 그리는 광주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온갖 짐들이 가득 들어찬 내방 서랍 같다. 필요할 때마다 뒤적거리면서 적절한 상징들을 골라서 사용하지만 그것들이 쌓아올려 만들어낸 모습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고장에 대한 느낌이 그렇다. 

2014년 4월 ‘100%광주’라는 프로그램에 코디네이터로 참여하여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관객의 대부분은 서울시민이었고, 공연 중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코너가 하나 있었다. “당신은 광주를 한 번이라도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질문에 뒤이어 관객들이 손을 들며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천오백여 명 되는 관객들 속에 20여 명 남짓의 손이 들어진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새삼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인 충격이었다. 광주라는 지역에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과연 그들에게는 광주가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서울 사람들에게는 한 지역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광주에서 활동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은 소위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들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 뮤지션들 또한 보다 더 넓은 인프라와 체계화된 시스템의 필요에 따라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하였다. 나 또한 함께 활동하는 팀원이 ‘서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팀을 떠난 경험이 있고, 여러모로 지역 안에서 자생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지역에서 부족한 자원으로 복작이기보다는 ‘서울에서 전문화된 학습을 하거나 큰 규모의 경험을 하는 게 나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혹은 ‘당장 서울로 올라가지 않는 것은 도전 의식이나 적극성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며 열등감 비슷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도시의 규모나 기회 측면에서 보면 그거 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점차 큰 도시로 이동해 가는 게 발전이고 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유행하는 상품이 광주까지 내려오는 데에 약 한 달여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럼 우리 지역은 서울과 한 달여의 문화 시차가 발생하고, 그만큼 뒤처져 있다는 방증일까. 분명 어떠한 기준의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을 단순히 한두 가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의 양식과 문화가 각각 다를진대 오로지 경제 규모로만, 인구로만, 심지어 프랜차이즈 매장의 개수로만 서열과 우위를 쉽게 나누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평가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지역이 방문객들에게, 그보다는 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지역민들에게 각인 될만한 특색이 있었으면 좋겠다. 국가 차원에서 ‘하사’ 해주신 거창한 단어들보다 지역을 살아가는 이들이 삶의 내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을 만한 우리만의 지역 문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도시의 규모에서 비교하고 차이를 얽어내기보다는 지역만의 특색있는 문화가 조성되어 각각 다른 색깔, 맛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고 또 다양한 인재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과거 백남기 열사의 물대포 사건으로 촛불시위와 경찰의 과잉 진압이 전국적으로 크게 문제시되고 시위의 양상이 경찰과 시민의 대치로 전국이 프레임화 되어 있을 때, 광주에서의 시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찰의 협조 아래 평화롭고 안정적이게 진행되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보며 내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사와 문화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토착화된 내면의식이 우리에게 각각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생기게 하고 이러한 자긍심들이 결국 우리를 지역으로 다시 이끌 것이다. 나는 우리 지역이 단순히 살아가는 곳이 아닌 삶과 마음의 토양으로서 굳건히 버텨주고 안정감을 주는 곳이 되길 기원하고, 나 또한 그런 구성원이 되길 바란다.

얼마 전 <2018 문화의 달> 행사가 열렸던 순천에 관련 행사 참여차 방문한 적이 있다. 인근 디자인 업체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인 또한 광주에서 있있지만 순천 내려온 지 6년이 다 되어가는데 순천이 정말 살기 좋은 동네라면서 뿌듯해하시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게 이러한 과정이 아닐는지. 각자의 터무늬를 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지역민들이 모여 지역의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일 것이다. 지역은 결국 지역의 구성원들이 만드는 것. 환경 속에서 지역구성원들의 삶의 양식이 바로 그 지역의 모습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고, 삶의 역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살아갈 미래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게 더 큰 도전을 회피하고 우물 안에서만 안주하는 모습으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의 구성원들과 연대감 속에서 고유의 공동체를 꾸린다면 어느 곳 모두가 아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축제를 만들어 내고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가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성장했던 곳에서 또 나중에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마치 몸속의 세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굳건히 자리 잡고 시나브로 성장해가는 것이 우리 몸의 거대한 성장으로 나타나듯이 이렇게 각 지역의 문화가 살아나는 것 그게 바로 이 나라 문화의 성장으로 직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 김한열 (소파 사운즈 광주 디렉터)

hanyury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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