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문턱 없는 극장 –’성북마을극장’으로 오세요.


누구에게나 문턱 없는 극장 –’성북마을극장’으로 오세요.

‘성북마을극장’의 설립은 장애인 문화 활동 기획자, 소수자와 약자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온 연극인 그리고 지역 풀뿌리 문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성북구에 연습 공간을 두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인이 모여 함께 작업해왔던 우리는 공연을 올릴 때마다 극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과 지원은 다양하고 많은데, 정작 프로그램과 작품을 발표하고 공연할 극장을 찾는 일은 정말로 늘 어려웠다. 휠체어 등 장애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극장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대학로에서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극장을 조사해 보았다. 조사 결과 전체 160여 개 극장 중에 15곳만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극장들이었다. 당시에는 극장 하나하나를 일일이 돌아다닐 여유가 없어 전화상으로만 확인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15곳의 극장을 다시 확인해보니 단순히 극장 입구까지의 접근만 가능하고 객석 입장은 불가능한 극장들이었다. 이 극장들을 제외하고 나니, 휠체어 관객이 입장 가능한 극장은 10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대기실과 무대의 출입까지 가능한 극장을 파악해보니 더 줄어들었다. 

민간 극장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공공 극장은 장애인 접근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극장은 많지 않았다. 또 장애인이 관객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지만, 장애인이 배우로 설 수 있는 극장은 더욱 제한되어 있었다. 서울시는 10년 전부터 이런 극장을 만든다고 공약했지만, 절박하게 필요한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과 함께 작업하는 비장애인 예술가들의 기다림에 비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여전히 그렇다. 

극장을 찾는 일이 또 어려웠던 이유는 비싼 대관료 때문이었다. 수많은 극장이 밀집한 대학로에서 그나마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극장들은 대부분 공공 극장 아니면 상업연극을 주로 하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었다. 민간단체가 보통 1일 대관료 최소 가격이 30만 원이 훌쩍 넘는 극장을 대관하는 일은 공공 지원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장애인이 배우로 출연하는 연극은 (지금도 그렇지만) ‘잘 팔리는’ 무대가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자 

이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한 우리는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와 약자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계단과 턱없는 극장, 가난한 연극인들이 부담 없이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극장’을 직접 만들기로 결의했다.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문화 공간 접근과 향유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극장,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상호 소통하는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여 상업적 목적이 아닌 새로운 주민 문화예술 공동체 형성을 통한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시민의 극장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비싸고 비싼 대학로를 벗어나기로 했다. 대학로에서 멀지 않지만, 대학로처럼 비싸지 않은 곳. 그리고 연극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곳은 ‘성북구’였다. 또 대학로에 인접해있기 때문에 성북구에는 연극인을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성북구에 있는 극장을 조사했는데 연극할 수 있는 공연장은 고작 5개였다. 이 극장들 중 2개는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했고,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극장도 지역에 열린 극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북구에 극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와 정부 여러 부처를 비롯하여 우리의 비전을 이해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는 한편, 극장이 될 만한 장소를 찾아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기존 극장 중에 우리가 확보하는 재원으로 운영 가능하며, 엘리베이터 여부, 계단 유무 등 휠체어 접근이 용이한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극장으로 설계 가능하며 휠체어 접근권이 확보될 수 있는,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공간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는 건물주들 대부분이 공간을 극장으로 개조하는 부분에 대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한 건물주는 계약금까지 받은 상황에서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 멤버 중 한 명이 준 명함 때문이었다. 자기 건물에 장애인들이 들락날락하면 보기 안 좋다는 이유로 계약을 취소했다. 슬프고 화가 났다. 그래서 더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렇게 1년을 돌아다닌 끝에, 성신여대입구역 번화가에 위치한 지금의 극장 공간을 만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땀이 모아져 탄생하다 

지역과 부처의 공공 재원은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텅 빈 공간을 극장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우리가 구한 공간은 고작 30평이 조금 넘는 크기였다. 이 곳을 80석 내외의 객석, 휠체어를 탄 배우가 자유롭게 대기실과 무대와 객석을 오갈 수 있는 동선 확보, 조명이나 소품 등을 보관할 창고, 오퍼실 그리고 방염처리까지 갖춘 극장으로 바꾸어내야 했다. 각자의 네트워크와 재능과 시간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지역과 여러 예술인들의 도움으로 2015년 9월에 개관했다. 

‘극장이 잘 운영될 수 있을까? 대학로에서 벗어난 극장을 찾는 연극인과 관객이 많이 있을까? 어렵게 어렵게 극장을 만들었는데 바로 망하는 건 아닐까?’ 

극장 운영이 처음인 우리는 극장이 비는 날이 많을까 걱정했다. 다행히도 극장 대관을 문의하는 전화가 계속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극장이 비는 날보다 비지 않는 달이 늘어 갔다. 어느 달은 극장이 다 차서 새롭게 대관 신청을 받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자 우리는 새로운 고민을 만나게 되었다. 극장이 망하면 안 된다는 우려 때문에 ‘어쩌면 극장을 만든 본래 취지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이었다. 그래서 외부 대관을 받는 한편, 성북마을극장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우리가 본래 하고자 했던 무대를 함께 시도했다. 

2016년부터 ‘인권연극제 이어가기’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 인권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연극인이 검열과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신의 신념과 고민을 펼칠 수 있는 작품들을 올렸고, 인권 문제와 연극에 관심 있는 자발적인 시민의 모임을 주도하여 시민연극의 무대를 만들었다. 공공지원금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지지자들의 연극 축제인 퀴어연극제를 지지하며, 2016년 창단 이후 지금까지 매달 성북마을극장에서 공연을 함께 올려오고 있다. 2018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축제인 장애인 네트워크 연극제를 열었고, 제작비가 부족한 극단과 젊은 연극인들에게 대관료 할인 등의 협력을 통해 작품이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16년 부터는 매년 4월 16일 전후를 ‘세월호 기억 주간’으로 정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무대를 올려오고 있다. 물론 올해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무대는 계속된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아주 조금씩 성북마을극장이 주변에 알려지고 있다. 극장을 만든 이유와 비전을 잊지 않고 운영해 온 각자의 노력이 성북마을극장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여전히 성북마을극장은 많은 돈을 버는 극장은 아니지만, 우리의 비전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연극인과 지역민들과의 관계 맺기가 지속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 성북마을극장1은 기본적으로는 마을극장을 표방하고 있고, 또 하나의 키워드는 ‘인권’이다. 상업적인 작품이나 뮤지컬 등으로 돈을 버는 다른 극장과는 달리, 성북마을극장만의 정체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무대는 ‘사회적 약자’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극장이다. 단순히 공간만 내주는 극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극장이 성북마을극장이 꿈꾸는 지속 가능한 극장의 모습이다.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일상과 소통 곳곳에 새롭게 서로를 바라보고 발견해줄 수 있는 창의의 문화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소통은 다수와 기득권의 편견과 판단 속에 갈등과 억압과 차별의 문화로 흐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창의가 삶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각자의 실체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발견된 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공동의 모색이 필요하다. 즉,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 개개인의 소소한 문제의식과 해결에의 고민이 공통의 관심으로 이어지는 순간 ‘매개’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개’의 문화에서 공통의 가치를 발견하고 연대하고 확장할 수 있는 공동체의 창의적 문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예술에는 잣대가 없다. 성북마을극장은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 고유성을 되살리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 이 고유성을 다양성의 가치로 확장하고, 경직된 목적성 대신 무엇과도 만나고 혼합되고 합성될 수 있는 우발성의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 연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 운영 4년 차, 발견하는 놀라움 중의 하나는 성북마을극장을 통해 만난 여러 극단과 연극인, 그리고 시민들이 다른 작품의 연극인과 만나 새로운 작품을 함께 만들고 시민으로서 관객으로 찾아주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들이었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연극인이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무대, 지역주민이 한데 모여 놀 수 있는 마당, 장애인 배우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무대, 성북구 연극인들의 든든한 비빌 언덕. 사람을 품어 행복하고픈 성북마을극장이 문을 닫는 날은 아주 먼 미래가 될 것 같다. 

성북마을극장으로 오시라. 

글. 쭈야 (연극연출가, 평화활동가)

jjuya0715@gmail.com



1     http://sbthea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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