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시에 대한 몇 가지 시선 – 전 세계 예술가들이 ‘지역’으로 향하는 이유

ⓒ차나영 제공

레지던시에 대한 몇 가지 시선 – 전 세계 예술가들이 ‘지역’으로 향하는 이유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찾아오는 강원도 원주/문막의 작은 시골마을이 있다. 

폐교를 예술가 창작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후용공연예술센터’는 연극 분야의 예술가 8명이 상주하며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곳이다. 2001년 개관 이후 30개국 300여 명의 다국적 다장르 예술가들이 레지던시를 거쳐 갔으며, 무수한 예술세계가 교차하고 탄생하고 흡수되는 과정을 반복해온 공간이다. 후용공연예술센터는 작은 농촌 ‘후용리’의 초입에 있다. 그 흔한 이정표나 간판도 없어서 혹 사람들이 떠나간 폐교, 버려진 노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곳은 매년 전 세계 예술가들의 다양한 창작세계가 모여드는 생명력을 지녔다. 

‘후용공연예술센터’의 레지던시는 2001년 이후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초기 10여 년은 아티스트가 원하는 상주 기간을 신청해서 자율적인 창작 활동을 영위하는 방식, 그 이후는 공식적인 레지던시 기간 동안 자유주제 혹은 정해진 주제로 지역과 창작을 연결시키는 방식, 그리고 2012년부터는 휴식기를 가지며 개별적으로 레지던시를 요청하는 예술가들에 한해 공간을 오픈했다. 2017년부터 공식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했으며, 이는 그간의 레지던시와는 다른 형식으로 시도되었다. 약 4주 동안, 공동 주제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개별 작업을 하나의 쇼케이스로 연결하는 형식이었는데, 이는 예술가들이 레지던시 기간 동안 운명 공동체로써 서로 간의 창작세계를 공유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예술가 개개인의 창작을 토대로 하되 상호 연계적인 작업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후용공연예술센터’에서의 레지던시 작업을 소개하자면, 2017년 공동 주제는 ‘21세기 민주주의’ 그리고 2018년은 ‘21세기 어바니즘(Urbanism)’으로, 동시대 이슈를 함께 고민하며 본인만의 작업으로 해석하고, 이를 타 예술가의 작업과도 연결, 협업하는 프로세스로 진행되었다. 2017년에는 페루, 멕시코, 브라질, 프랑스, 베트남 등 다양한 대륙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는데, 그들이 생에서 경험하고 생각해온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서로에게 다르지만 같고, 의아하지만 흥미롭고, 새롭지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술 너머의 그 무엇이었다. 2018년에 참여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예술가들의 ‘ 어바니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소통의 과정은 서로의 작업에도 영감이 되었으며, 앞으로 예술가들이 세계에서 펼쳐나갈 창작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는 자양분과도 같았다.

레지던시는 한 명의 예술가가 향후 전 세계의 관객을 만난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파급력이 엄청나기에, 레지던시 기간 동안 예술가가 겪는 경험과 영감, 주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2017년에 레지던시를 다시 공식적으로 시작했을 당시, 공동 주제라는 새로운 형식도 있었지만 참여 예술가 선정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시도가 있었다. 후용공연예술센터의 지난 레지던시를 다시 한번 피드백한다는 측면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한 이후 왕성한 활동으로 성장된 커리어를 지닌 프랑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일부 예술가를 다시 초청한 것이었다. 후용공연예술센터의 레지던시를 앞서 경험한 예술가로서 새로운 예술가에게 그간의 발전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였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체계 또한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발전 방향을 계속해서 궁리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레지던시를 거쳐 간 예술가들이 전 세계의 극장, 갤러리 등에서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후용 공연예술센터 레지던시 또한 예술가와 함께 성장해왔다는 큰 성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레지던시의 강점은 주변 환경에 있다. 저마다 다른 문화와 생활상을 지닌 지역은 예술가들에게 독특한 영감으로 다가온다. 농촌, 섬, 숲, 바다 등 자연환경이 있을 수 있고, 그 지역의 사람들, 생활방식, 사고의 척도가 창작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대도시 안에서도 지역성은 내재되어 있으므로, 지역을 지방이나 자연환경이 특화된 곳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이라는 살아있는 삶, 특유의 생활상을 예술가들이 언제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키노사키국제아트센터(Kinosaki International Arts Center)는 1,300년의 역사를 지닌 작은 온천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온천이라는 지역적 환경을 통해 레지던시 예술가들은 다양한 창작 영감을 흡수할 수 있다. 마을 전역에 퍼져있는 온천 특유의 따뜻한 향기, 새벽이면 7개의 온천에서 일제히 피어나는 연기, 오래된 이발소와 시계방, 일본의 정서가 차분히 녹아있는 작은 선술집 등 지역민의 생활상 곳곳에서 예술가들은 때때로 발칙한 지점을 찾아내곤 한다. 

후용공연예술센터 또한 농촌의 정서가 녹아있는 자연적 환경을 지녔다. 레지던시가 진행되는 가을이면 마을 어르신들은 집 앞마당에서 저마다 콩을 털고, 밭을 가꾸고, 배추를 뽑는다. 논길을 가로질러 산책하다 보면 섬강이 펼쳐진다. 2018년 레지던시에 함께한 오스트리아 예술가 니나는 섬강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활용한 설치 작품 ‘당신의 흔적을 기억하십시오’를 선보였다. 니나는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 섬강에 버려진 폐타이어, 녹슨 캔과 부탄가스, 깨진 유리병 등을 한가득 싣고 와서는 깨끗이 씻고 말리는 작업을 지속했다. 니나는 “이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섬강 주변에 쓰레기를 치웠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라는 말로 우리에게 레지던시의 궁극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예술가는 레지던시가 주는 환경적 요건에 따라 창작의 변주를 지속할 수 있다. 스스로의 창작세계를 기반으로 하되, 지역에서 조우하는 다양한 요소를 통해 창작 영역을 넓혀간다는 의미이다. 

지역 레지던시는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이 지역으로 유입되고, 지역에서의 경험을 통해 독창적인 창작이 이루어지며, 그 창작이 전 세계로 파생된 후 다시금 지역으로 환류되어 지역 예술의 자양분으로 켜켜이 쌓여가는 순환 구조를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 레지던시는 보통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필수 요소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견고하게 설계되지 않거나 지역과의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예술가와 지역민 간 불편한 동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레지던시의 주최 단체가 오랜 기간 동안 지역민과의 유대관계, 신뢰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면 상호 간 유익한 방향일 수 있겠지만, 결국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영역은 온전히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선택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후용공연예술센터 또한 이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레지던시와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것은 높은 사회적, 공공적 의미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레지던시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정해진 거주 기간 동안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라면, 결국 예술가의 시야는 축소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레지던시의 유의미한 환류를 기대한다면, 예술가들의 시야가 공간을 넘어서 지역, 사람, 환경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주변 환경과 지역적 특색을 예술가들과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보다 밀도 있는 설계를 통해 과정 속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끊임없이 도출해낼 수 있도록 도모되었으면 한다. 충분한 시간과 고민을 가지고 견고하게 설계된 레지던시가 지역마다 세포처럼 존재할 수 있다면 예술계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예술가는 각각의 지역에서 다른 창작의 옷을 입을 수 있고, 지역은 각각의 예술가를 통해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특별한 지역성을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레지던시를 위해 정갈한 공간이나 완벽한 시설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후용공연예술센터는 오래된 숙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극장을 가지고 있다. 레지던시를 위해 필요한 것은 레지던시를 준비하는 단체의 확고한 방향성과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들을 향한 ‘존중’일 것이다. 

글. 차나영 (후용공연예술센터 프로듀서)

bestaru@naver.com


2017년 후용예술센터 레지던시 쇼케이스 ‘아티스트 토크’ ⓒ차나영 제공

2017년 후용예술센터 레지던시 쇼케이스 ‘콘스엘로 메네시스’ (멕시코) ⓒ차나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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